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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민단체에 기대는 민주당…기시다 방한 앞두고 '반일감정' 결집

중앙일보

입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시민단체와 연대해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여론전에 돌입했다. 민주당이 펼쳐온 ‘윤석열 정부 무능 외교’ 프레임 공세의 일환인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당장 정부·여당 흠집 내기에만 주력한 탓에, 시민단체 수준의 과격한 구호에 매몰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주최로 '기시다 일본 총리 방한 관련 시민사회 및 정당 입장발표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일본 식민지배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단 및 일제 강제동원과 일본군성노예제 사죄배상을 촉구했다. 또 참석자들은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와 일본의 재무장 중단을 촉구했다.뉴스1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주최로 '기시다 일본 총리 방한 관련 시민사회 및 정당 입장발표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일본 식민지배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단 및 일제 강제동원과 일본군성노예제 사죄배상을 촉구했다. 또 참석자들은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와 일본의 재무장 중단을 촉구했다.뉴스1

민주당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위원장 김상희)는 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정의당·진보당 및 시민단체들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서를 통해 “급조된 한·일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며 “일본은 식민지배 역사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당장 주장하라”면서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날 기자회견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단체가 총출동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일본의 수장 기시다 총리에게 경고한다. 과거의 시간 속에 갇힌 수인(囚人)이 될 것인가 아니면 환골탈태로 서로 손을 맞잡을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숙제 검사하러 오는 길이라고 한다”(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 “윤 대통령이 국익은 내팽개치고 미·일의 셔틀 노릇을 하고 있다”(정종성 6.15 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 같은 윤 대통령 비하 발언도 이어졌다.

시민단체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168석 민주당 소속 김상희 위원장은 “기시다 총리에게 일단은 환영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강제동원 문제 사죄·반성, 전범기업 배상이행 대한 전향적인 입장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점잖은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 역시 손에 ‘일본의 역사왜곡 규탄’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한·일,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민주당이 시민단체와 국회 계단 앞에 나란히 선 건 지난 3월 7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성토하고 철회를 요구한 지 두 달 만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후 같은 달 3월 11일, 18일, 25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서울광장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 대회’에 참석했다.

또다시 시민단체와 보조를 맞추는 움직임이 이날 본격화되자, 민주당 일각에선 “섣부르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가 안보 이슈에 중점을 두고 과거사 사죄 계승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면서 “일단은 발언 수위 등을 지켜본 뒤 움직여도 늦지 않을 텐데 왜 이리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앞서 지난달 후쿠시마 방일 때도 제기된 바 있다. 위성곤·양이원영·윤재갑·윤영덕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6~8일 일본 도쿄와 후쿠시마를 방문했는데, 정작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 방문은 불발됐다. 이들이 만난 현지 주민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대부분 원전반대 활동을 벌여온 이들이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후쿠시마 방일 때도 민주당이 시민단체 수준으로 접근하려는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아예 시민단체 손을 잡고 세 과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시민단체와의 무분별한 연대가 오히려 정당 본연의 역할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으로서도 정부·여당과 외교·안보 이슈를 얘기할 공간이 없으니까 시민사회단체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렇더라도 거리에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적인 방향에 대해선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18일 동아시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진보파들은 정당보다는 운동을 통한 정치참여의 길로 나아갔다”며 “촛불시위 이후 시민운동이 정당과 차이가 없는 유사정당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은 6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한다. 한일정상회담 당일인 7일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이어간다. 다만 민주당 측은 “이번에도 시민사회 쪽에서 거리시위를 같이하자고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올해 첫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를 개최하고, 국방안보특별위원회를 추가로 출범시키는 등 당내 기구를 통한 ‘굴욕 외교 중단’ 캠페인도 병행했다. 이재명 대표는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일본에는 무한하게 퍼주고, 미국에는 알아서 접어주는 소위 말하는, 이런 표현을 하기 싫은데, ‘호갱’ 외교를 자처했다”고 윤 정부의 대일·대미 외교를 싸잡아 비판했다.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박광온 원내대표는 “위원회가 이 정부의 취약한 안보정책 전략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우리 당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고 격려했다. 민주당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운영위원회 등을 소집해 회담 결과에 대한 현안질의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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