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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25%가 일 안한다…이탈리아, 기본소득 4년 만에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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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을 맞은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부의 노동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등의 모습을 한 얼굴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노동절을 맞은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부의 노동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등의 모습을 한 얼굴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노동절(5월 1일)을 맞아 노동시장 개혁에 착수했다. 기본소득 정책 실시 4년 만에 혜택 금액과 기간을 축소하고, 기업에는 단기 계약 고용 길을 터줬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유럽 최대 청년 ‘니트족’(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이날 내각 회의를 열고 이른바 ‘노동 개혁 패키지’ 법안을 의결했다. 지난 2019년 도입된 기본소득 정책인 ‘시민소득’의 명칭을 ‘포용수당’으로 바꾸고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게 골자다. 로이터가 입수한 개혁 초안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일자리가 없는 18∼59세 빈곤층에 가구당 월평균 550유로(약 81만원)를 제공해왔는데 내년 1월부터 이를 월 350유로(약 52만원)로 줄이기로 했다. 수령 기간도 최대 12개월로 제한하고, 이 기간에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근로 가능 인구의 구직 활동을 장려하는 게 목표다. 개편안은 이와 함께 기업이 12~24개월짜리 단기 고용 계약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한 ‘일자리 바우처’ 이용 범위도 확대한다.

멜로니 총리는 내각 회의를 마친 뒤 “정부가 말뿐이 아닌 사실로 노동절을 기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시민소득 개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시민소득 제도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키우고 청년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뜨린다”며 혜택 축소를 주장해왔다. 다만 미성년자, 60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이 속한 가구에 대해선 혜택을 늘려 최대 30개월 동안 월 500유로 이상 받을 수 있게 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19년 134.1%에서 시민 소득 시행 후인 2020년 154.9%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144.7%로 다소 하락했지만, 유럽연합(EU) 평균 85%를 훌쩍 웃돌아 그리스(178%)에 이어 2위다.

니트족 문제도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15∼29세 청년층 중 구직을 단념한 니트족 비중은 4명 중 1명꼴(23.5%)로, EU 회원국 중 가장 높고 EU 평균(13.1%)의 약 두 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해 채용의 어려움과 고용 비용을 호소하는 기업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청년층의 구직 활동을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당근책도 함께 제시했다. 오는 7월부터 12월까지 연 소득 3만5000유로 이하 임금 노동자의 소득세를 4%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40억 유로의 예산을 배정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녀를 둔 근로자에 대해 연간 최대 3000유로의 세금도 면제해준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재정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생활비 위기에 맞서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라며 “월평균 100유로의 감세 혜택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요 노조와 야당은 이번 조치가 노동자들을 생계 위기로 몰아넣고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야당인 오성운동(M5S)의 대표인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제대로 된 정부라면 노동절에 젊은이들을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오성운동은 시민소득 입법을 주도했던 당이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IL)의 마우리치오 란디니 대표도 “법안이 고용 불안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반발해 수도 로마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한편 노동절을 맞아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도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에선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정부 추산 78만2000명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거리에 나섰다. 독일 전역에서도 3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노동쟁의권 제한 반대, 주4일제 도입, 산업별 협약임금 적용, 최저임금 인상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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