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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64화. 인어공주

중앙일보

입력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바란 진짜 이유

오랜 옛날,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바닷속에 바다의 왕과 신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아내를 잃은 왕에게는 사랑스러운 딸, 아름다운 공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막내 공주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지만 다른 공주들과 달리 바다 위 세계, 인간이 사는 도시와 그곳의 동물들, 땅 위의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주는 할머니에게 지상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죠. 그것은 어린 공주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하나하나 흥미를 보이며 즐거워했어요. “열다섯 살이 되면, 바다 위로 올라가 달빛을 받으며 지나가는 큰 배들을 볼 수 있단다. 분명히 숲과 도시도 볼 수 있겠지.”

열다섯 살이 돼 물 위로 향한 막내 공주는 커다란 배를 발견했습니다. 다가가 보니 젊은 왕자의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죠. 공주는 배와 왕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폭풍이 밀려오고, 배는 두 동강 나고 말았어요. 공주는 왕자가 깊은 바다로 빠져드는 것을 보았죠. 공주는 왕자가 자기와 함께 있게 될까 기뻐했지만, 사람은 물속에서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바다 밑으로 향한 공주는 정신을 잃은 왕자를 구해 육지로 옮겼어요. 다가온 사람들 덕분에 왕자는 살아났지만, 공주는 몸을 감추어야 했죠.

“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공주는 바다 마녀를 찾아 도움을 청했습니다. 바다 마녀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경고하면서도 공주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대가로 인간이 될 수 있는 마법 물약을 내주었습니다. 그렇게 공주는 두 다리를 얻었어요. 인간으로서의 발걸음은 끝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공주는 걸어나갔습니다. 왕자의 사랑을 얻어, 인어에게는 없는 불멸의 영혼을 얻고자. 과연 그 소망은 이루어질까요?

덴마크 코펜하겐 랑겔리니 항구 해안가에 있는 인어공주상. 차가운 북해의 항구를 보고 있는 모습이 동화의 슬픈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 랑겔리니 항구 해안가에 있는 인어공주상. 차가운 북해의 항구를 보고 있는 모습이 동화의 슬픈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인어공주』는 덴마크의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대표작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인어공주는 마녀를 물리친 왕자 덕분에 완전한 인간이 되어 왕자와 맺어지지만, 안데르센의 원작에선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죠. 그의 동화는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 적지 않은데, 『인어공주』도 매우 안타까운 느낌이에요. 하지만, 안데르센은 이 이야기를 비극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인어공주는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공기의 딸’ 공기의 정령이 되었기 때문이죠. 원작에서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얻고자 한 것은 왕자에게 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랑을 얻으면 인간만 가졌다는 불멸의 영혼을 얻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화 속에서 인어는 인간보다 훨씬 긴 300년 가까이 살 수 있지만, 죽으면 거품이 되어 사라집니다. 시체도 남지 않으며 아무것도 없다고 하죠. 공주의 할머니는 말합니다. “인간은 몸이 재가 되어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영혼이 있단다. 그 영혼은 맑고 깨끗한 공기를 뚫고, 미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으로 올라가지.”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공주는 마녀의 경고대로 사라질 운명에 처합니다. 공주에겐 왕자를 죽임으로써 인어로 돌아갈 길이 있었지만 택하지 않죠. 바다로 뛰어든 공주는 자신이 공기의 정령이 되었음을 알게 돼요. 고통을 겪고 견디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선행 덕분에 고귀한 정신세계로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고결한 영혼의 길을 택하는 이 결말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로서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전에 소개된 『인어공주』는 대부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이야기’로 막을 내려요. 그래서 『인어공주』는 슬픈 결말로만 기억되고,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이 디즈니 작품처럼 ‘인간이 되어 결혼’이라는 결말에 환호하죠.

사랑을 얻어야만 행복이라고 한다면, 공기의 정령이 된 인어공주도 불행한 결말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공기 정령은 삼백년 동안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만 영혼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설정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죠. 인간은 본래부터 영혼이 있는데 인어나 정령은 힘들게 노력해야만 하고 인간의 사랑을 받아야만 영혼을 얻을 수 있다니…. 하지만 잘 살펴보면, 모든 인어가 영혼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공주의 할머니도, 언니들도 긴 수명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 만족합니다. 바다 밖 풍경을 즐겁게 구경하지만, ‘그래도 바닷속이 훨씬 좋다’라고 말하죠.

많은 신화나 전설에서 인어는 일종의 정령으로 나옵니다. 정령인 그들의 행복이 인간인 우리와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에요. 단지 막내 공주만이 여러 인어와 다른 바람을 갖고 노력한 것이죠.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이 짝사랑하던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쓴 이야기라고 해요.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때문에 인어공주처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죠. 평범한 사회를 동경하지만, 마음을 말로 꺼낼 수 없었던 안데르센은 그의 마음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어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의 여러 이야기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사랑받는 것은 인어공주처럼 고결한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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