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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변주곡' 성공적으로 이끈 두 한국인, 강효정과 윤홍천

중앙일보

입력

27일(현지시간) 밤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발레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한 장면.  사진 빈 국립발레단

27일(현지시간) 밤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발레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한 장면. 사진 빈 국립발레단

27일(현지시간) 오후 7시 공연 직전,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관객들의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위스 출신 하인츠 슈푀를리(82) 안무의 발레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1993년 뒤셀도르프 초연 30년 만에 빈 국립발레단이 초연하는 날이었다.
오프닝 무대는 이스라엘 출신 오하드 나하린(70) 안무의 ‘타불라 라사’가 장식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가 기돈 크레머를 위해 쓴 작품을 춤으로 옮겼다. 패르트 특유의 정적인 순간과 바이올린의 가녀린 연주가 돋보였다. 기나긴 악구가 연주되는 동안 신비하게 흔들리는 마리오네트처럼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하인츠 슈푀를리 ‘골드베르크 변주곡’ 빈 국립오페라극장 초연 #피아니스트 윤홍천 연주에 맞춰, 빈 수석 무용수 강효정 춤 춰 #현지 언론 “강효정 발레 미학 돋보여” “윤홍천 기립박수 불러”

빈 국립발레단과 함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출한 세계적 안무가 하인츠 슈푀를리.  사진 빈 국립발레단

빈 국립발레단과 함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출한 세계적 안무가 하인츠 슈푀를리. 사진 빈 국립발레단

빈 필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리스토프 콘츠가 지휘한 빈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함께 두 바이올리니스트 야멘 사디와 라이문트 리시의 바이올린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호연을 들려주었다.
1부 ‘타불라 라사’가 관객의 관심을 수렴했다면, 2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관객을 향한 발산과도 같았다. 먼저 오케스트라 피트 좌측 피아노에 윤홍천(41)이 등장하며 갈채를 받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빈 국립오페라극장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피아니스트 윤홍천(왼쪽)과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사진 빈 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 빈 국립오페라극장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피아니스트 윤홍천(왼쪽)과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사진 빈 국립발레단

윤홍천이 맑은 타건으로 첫 곡 ‘아리아’를 연주하자 실루엣처럼 정지해있던 무용수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30여명의 무용수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에 맞춰 춤췄다. 독무, 2인무, 3인무 등 다양한 편성이 펼쳐졌다.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38)은 역동적인 표현으로 관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회전 속도와 동작의 시원시원함이 남달랐다. 섬세하고 동양적인 처연함을 머금은 윤홍천의 해석은 화려한 발레 동작과 어우러져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만들었다.

꽃잎이 흔들리는 듯 가녀린 아리아가 끝나자 암전과 더불어 관객들의 ‘브라보’ 세례가 오페라극장을 휘감았다. 현지 언론의 반응도 고무적이었다. 오스트리아 신문 ‘비너 차이퉁’은 “능숙한 강효정의 발레 미학이 다시 한 번 돋보였다”고 평했고, ‘데어 스탄다르트’는 “윌리엄 윤(윤홍천)의 연주는 기립박수를 불렀다”고 평했다.

하인츠 슈푀를리는 바흐·모차르트·쇼팽·차이콥스키 등 다양한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발레로 탄생시켰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마그니피카트’ 등과 더불어 바흐의 사랑받는 건반음악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무용으로 옮긴 작품은 클래식 음악팬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연 전 만난 슈푀를리에게 바흐 음악을 즐겨 안무하는 이유를 묻자, “바흐는 마치 약과 같다. 어떤 복잡한 마음의 병도 치유하는 힘이 그의 음악엔 있다”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엔터테인먼트처럼 발레를 가까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발레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섬세한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사진 빈 국립발레단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발레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섬세한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사진 빈 국립발레단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란 ‘강수진 키드’ 였던 강효정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처음 입단해서 주역이 될 때까지 강수진 단장을 동경했다”고 했다.
17년간 몸담았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떠나 2021년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옮긴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건반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동시성이 관건이다. 36명이 의상을 계속 갈아입고 나온다"면서 "색감이 멋지고 감각적이면서 절제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강효정은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한 올해 빈 필 신년음악회 영상의 발레 장면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오스트리아 멜크에서 찍었어요. 날씨가 안 좋아 걱정했는데 제작진이 태양을 만들다시피 해서 감쪽같은 영상으로 만들더군요. 장인 정신을 느꼈죠.”

윤홍천은 이번 공연의 음악을 혼자 책임졌다. 연주에만 몰입해도 어려운 곡을 무용수들의 상황을 살피며 지휘자처럼 고군분투했다.
“15번 변주는 너무 느린 안무로 돼 있어서 납득이 안 갔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흐는 작품에 확실한 지정을 안 했죠. 빨리 치든 천천히 치든, 하프시코드든 바이올린이든 상관없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변주를 치다 보면 인생의 여정 같아요. 마지막 아리아는 첫 아리아랑 늘 달라요. 항상 감동이 밀려오죠.”

1년 전 슈푀를리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섭외를 받았다는 윤홍천은 “그때만 해도 어떤 무용수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강효정 씨를 보니 반가웠다”고 했다.

조곤조곤한 말투처럼 섬세하고 차분한 연주가 특징인 윤홍천은 뮌헨에서 활동 중이다. 욈스 클래식과 소니 뮤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와 슈베르트 소나타 등 음반을 냈다. 포레와 레이날도 안 작품집을 녹음해서 발매를 앞두고 있다. 7월에는 토마시 네토필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8월에는 롯데콘서트홀 축제인 클래식 레볼루션에 참가한다.
유니버설발레단 등과 내한공연 일정이 잡혀있는 강효정은 “코로나도 끝났으니 한국에서 무대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오스트리아 빈=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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