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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허영만도 반한 고기맛…"여자끼리 오면 안 받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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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중구의 한 뭉티기집 주인 장혜주(81) 할머니가 문을 닫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대구 중구의 한 뭉티기집 주인 장혜주(81) 할머니가 문을 닫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지난 26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한 식당. 불이 꺼져 있고 문 앞에는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앞에서 서성이니 주인 장혜주(81) 할머니가 나왔다. 허리에는 복대를 차고 있었다.

장씨는 “20일 전에 꼬리뼈 수술을 받아서 당분간 가게 운영을 못 한다. 여든이 넘으니 빨리 낫지 않는다.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했다. 가게 안에서는 계속 전화가 울렸다. 영업을 언제 시작하는지 문의하는 단골 전화였다. 장씨는 “손님들 생각하면 빨리 나아서 다시 가게 열어야지”라고 말하며 웃었다.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 대구=백경서 기자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 대구=백경서 기자

장씨 식당은 생고기를 판매한다. 대구 말로는 ‘뭉티기’다. 뭉티기는 소고깃집에서 파는 육회(肉膾)처럼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는 생고기다. 소 엉덩이 안쪽 우둔살 부위를 ‘뭉텅하게’ 썰어 내놓는다. 식당을 둘러보니 테이블은 3개뿐이었다. 내부가 좁아 그마저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장씨의 식당에서 메뉴는 생고기와 맥주·소주뿐이다. 가게 운영 시간은 오후 5~9시고, 주말은 쉰다. 주말에는 소를 잡지 않아서다.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의 생고기 한접시. [사진 Moon 블로그]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의 생고기 한접시. [사진 Moon 블로그]

사실 장씨 식당은 여성 손님들끼리 오면 받지 않는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인터넷 후기 등을 살펴보면 여성 손님 대부분은 이 가게를 애증(愛憎)하는 곳으로 꼽는다. 한 네티즌은 “여자끼리 와서 두 번이나 문전박대당했는데도, 그 후에 남자 친구들과 같이 가서 먹었다”며 “너무 맛있어서 가게 된다”라고 후기를 남겼다. 30대 직장인 황모(32)씨도 “설마 쫓아낼까 해서 가봤는데 여자끼리 가니까 안 받아주더라”며 “알고 갔는데도 퇴짜 당하니 속상했지만 오기가 생겨서 다시 가서 먹었는데 맛있었다”라고 말했다.

장씨도 “여성 손님들만 오면 안 받는 건 소문이 아니라 진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이 오해해도 어쩔 수 없지만, 가게를 오래 운영하기 위한 나름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대구 장원식당 후기. [사진 Moon 블로그 캡처]

대구 장원식당 후기. [사진 Moon 블로그 캡처]

장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에서 컸다고 한다. 36년 전 대구에서 밥집을 시작했다. 소 막창도 함께 팔았다고 했다. 그러다 2009년부터는 장씨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가게에서 모시고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장씨는 “조금만 한눈팔면 엄마가 사라졌다”며 “먹고 살아야 하니 손님에게 내줄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엄마가 눈앞에 보여야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 현재는 사정상 문을 닫았으며 내부에는 테이블 3개만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장혜주(81) 할머니가 운영하는 대구 뭉티기집. 현재는 사정상 문을 닫았으며 내부에는 테이블 3개만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이후 10여 년 전쯤 장씨는 생고기로 메뉴를 바꿨다고 했다. 계절별로 식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해 손님에게 반찬으로 제공해오다가, 어느 날 생고기를 접하고 뭉툭 뭉툭하게 썰어줬더니 손님이 맛있게 먹어서였다. 저녁 장사를 하게 되면서 장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일하면서 볼 수 있는 곳에 앉혀 놨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성 손님들끼리 오면 테이블 간 간격이 좁다 보니 옆 남성 테이블과 문제가 생기곤 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처음에는 각자 테이블에서 먹다가도, 술을 마시다 취하면 옆 테이블과 말을 섞게 되다 보니 성추행 등 문제가 생겨 경찰도 많이 불렀다”며 “치매 노인이 있으니,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여성 손님은 안 받게 됐다”고 말했다. 대신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장씨 손맛은 입소문을 탔다. 만화 ‘식객’을 그린 만화가 허영만도 2019년 방송에서 장씨의 식당을 소개하며 뭉티기 맛에 감탄했다. 당시 허영만은 “고기가 이 정도 선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구 진수를 맛봤다”고 말했다.

장씨는 생고기 맛 비결에 대해 “고기 앞에서 욕심내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장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시장에서 신선한 고기를 사 온다”며 “우둔살에서 힘줄과 마블링을 제거해야 찰진 뭉티기가 되는데, 아깝다고 생각하고 덜 걷어내면 맛이 없다”고 말했다.

생고기는 지역 향토 음식인 대구 10미(味)에 속한다. 대구시에 따르면 1950년 후반 경북 청도 등 한우로 유명한 인근 지역 소를 달서구 두류동 우시장에 모아 거래했다고 한다. 뭉티기를 비롯해 소와 관련한 다양한 음식이 대구에서 생겨난 계기다.

장혜주(81) 할머니가 손님들에게 내줄 고기를 썰고 있다. [블로그 캡처]

장혜주(81) 할머니가 손님들에게 내줄 고기를 썰고 있다.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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