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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소녀와 독수리' 참상 주범…수단 혼란 틈타 사라졌다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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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단 분쟁은 알바시르 통치의 유산이다.”

호주 비영리 학술매체인 더컨버세이션이 지난 15일 발발한 수단의 무력 충돌에 대해 내린 평가다. 매체가 꼽은 원흉은 수단 7대 대통령을 지낸 오마르 알바시르(79). 알바시르의 후계자와 그의 통치 잔재가 끝까지 수단 민주화를 발목 잡고, 궁극적으로 나라를 비참한 상황으로 이끌고 있다는 진단이다.

2017년 당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왼쪽)과 모하메드 함단 다글로 신속지원군(RSF) 사령관이 차량에 올라 지팡이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7년 당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왼쪽)과 모하메드 함단 다글로 신속지원군(RSF) 사령관이 차량에 올라 지팡이를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런 알바시르가 이번 군벌간 무력 충돌 혼란을 틈타,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는 2019년 4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뒤, 같은 해 12월 돈세탁과 부패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수도 하르툼의 코베르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정부군은 알바시르가 군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지만 사진 등의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군인 출신인 알바시르는 1989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사데크 알마디 총리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1993년 스스로 국가 원수에 등극한 뒤 2019년까지 30년 간 수단을 철권통치했다. 이집트와 영국의 지배를 받다 1956년 독립한 수단에서 최장기 통치자다.

아랍계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그는 아프리카계와 소수민족, 여성에 대해 가학적인 독재자였다. 수단을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형법의 근간으로 삼았다. 알바시르의 샤리아법은 코란을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성폭력을 용인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금기시했다. 또 수단 남부와 서부에 거주하며 기독교와 토착신앙을 믿는 아프리카계 수단인에 대해 손을 자르고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내렸다. 정적을 제거하거나 언론을 탄압할 때도 샤리아법을 적용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알바시르가 악명을 떨친 대표적 사건이 다르푸르 학살이다. 2003년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알바시르는 반군진압이란 명목 하에 2010년까지 ‘인종 청소’ 수준의 대학살을 자행했다. 성폭력·고문·학살 등 전쟁 범죄로 40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250만 명을 강제 퇴거시켜 난민으로 떠돌게 했다. ICC는 알바시르를 전쟁범죄·집단 학살 등 10가지 혐의로 기소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14년 수단 난민 여성들이 다르푸르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2014년 수단 난민 여성들이 다르푸르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여성에 대해선 ‘공공질서법’을 따로 적용했다. 신체를 노출할 수 없는 옷차림과 금주를 강제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개인 행동을 제한하고 범죄로 처벌했다. 이 법은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일단 범법으로 분류되면 징역·벌금·태형·재산 몰수 등 중형으로 다스려 여성 탄압의 빌미가 됐다.

아프리카계가 주류인 남수단은 알바시르의 탄압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부족이 똘똘 뭉쳐 2011년 분리독립했다. 영토가 비옥하고 석유와 수자원 등 경제 기반이 갖춰진 남수단 영토를 잃자, 수단은 사막 위주인 북부 땅만 남게 되면서 취약 국가로 전락했다.

1994년 수단의 참상을 알린 사진. 1994년 이 사진을 촬영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AP=연합뉴스]

1994년 수단의 참상을 알린 사진. 1994년 이 사진을 촬영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AP=연합뉴스]

알바시르를 ‘30년 권좌’에서 끌어내린 건 경제 파탄이었다. 2011년 남수단 영토를 상실한 뒤 재정 문제를 겪던 수단 정부가 2018년 12월 “빵과 기름값을 3배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당시 수단 전체 인구 중 30~40%가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다. 알바시르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빼돌려 90억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소문까지 돌자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까지 국방부 앞으로 몰려가 군인들을 향해 “시위에 합류하라”고 외쳤다.

결국 군부도 알바시르에게 등을 돌렸다. 2019년 4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알바시르를 축출한 뒤 구금했다. 이후 군부는 민간과 공동으로 ‘주권 위원회’란 이름의 과도정부를 운영하며 권력을 나눠가졌다. 군부는 2년 뒤 민간에게 완전히 권력을 이양하고 수단의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약속했지만, 2021년 10월 군부 1인자인 압델 파타흐 알부르한이 2차 쿠데타를 일으켜 수단의 새 독재자에 올랐다. 약속을 깬 군부는 과도정부에서 민간 대표로 시민의 목소리를 대표하며 민주화를 추진하던 압달라 함독 총리 등 각료들을 구금했다.

2020년 수도 하르툼에서 수단 시위대가 거리 시위를 벌이며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0년 수도 하르툼에서 수단 시위대가 거리 시위를 벌이며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수단 분쟁은 알바시르를 축출하고 2차 쿠데타까지 함께 한 군부가 둘로 찢어진 결과다. 하나는 알부르한이 이끄는 정부군, 다른 쪽은 민병대 ‘잔자위드’를 계승한 신속지원군(RSF)이다. RSF의 사령관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는 과거 알바시르의 비호 아래 다르푸르에서 민간인을 학살을 주도한 잔혹한 인물이다. 알바시르는 RSF를 정규군에 포함시켜 병력을 10만으로 키워줬다.

튀르키예의 최대 통신사인 아나톨루 에이전시는 “친서방 성향의 알부르한과 친러시아 성향의 다갈로 사이의 첨예한 이권 다툼이 이번 분쟁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수단 군벌 중 한 축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RSF 사령관. AP=연합뉴스

수단 군벌 중 한 축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RSF 사령관.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알바시르의 미스터리한 행방이 양 군벌을 자극해 수단 분쟁 격화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RSF는 “알부르한이 ‘폐위된 정권’을 복원시키기 위해 그를 빼돌렸다”고 주장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싸움이 길어질수록 수단은 분열되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수단 시민들은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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