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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현목의 시선

4월에 다시 듣는 ‘픽스 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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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현목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도로 위 역주행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가요계 역주행은 신선한 충격이자 재발견이다. 노래가 발표됐을 때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어떤 계기로 재조명돼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000만 흥행 영화가 사회적 분위기 등과 맞물려 탄생하듯, 역주행 노래 또한 뒤늦게 뜨는 이유가 있다. 걸그룹 EXID의 ‘위아래’가 팬들이 올린 직캠 영상(직접 촬영한 캠 동영상) 덕분이라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은 멤버들의 진심 어린 군대위문 공연 영상이 확산하며 역주행했다.

세월호 아픔 달랜 콜드플레이
시공 뛰어넘는 노랫말에 공감
역주행 노래의 원동력도 가사

지난해 하반기 다시 부각한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은 양상이 조금 다르다. 이 노래는 윤하가 엔데믹을 맞아 다시 열린 대학 축제와 공연 무대에서 열창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그리고 발매 8개월 만에 음원차트 정상권에 올랐다. 멜로디도 좋지만, 특히 가사가 감동을 줬다.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당신이 무언가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당신 안에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면서 등을 토닥여주는 가사에 많은 청춘이 위로받았다. “코로나 블루를 겪으며 위로와 희망의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시차 때문에 지금의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해도, 언젠가 발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는 윤하의 진심이 ‘시차’를 두고 대중에 전해진 셈이다.

‘건사피장’이란 줄임말로 불리는 걸그룹 하이키의 노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또한 위로와 공감의 가사로 역주행을 이끌었다.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고개 들고 버틸게 끝까지/ 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 웃을 때까지.’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장미처럼 꺾이거나 시들지 않고 활짝 피어나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들으면, 누구나 장미에 자신을 감정이입하게 된다. 응원은 순탄치 않은 데뷔 과정을 거친 멤버 자신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사건의 지평선’과 ‘건사피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다르지 않다. 이전 역주행 송들과 달리, 두 노래는 노래 자체의 힘, 특히 가사 덕분에 가치를 인정받았다.

음악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위로를 전해주는 건 가사다. 가사는 리듬과 멜로디에 실려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우리 가요 중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감동이 더해지고 삶을 반추케 하는, 한 편의 시 같은 노래들이 많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으로 시작하는 ‘서른 즈음에’(노래 김광석)가 오래전 서른을 통과한 이들의 가슴까지 저미는 건, 가사의 감동과 여운이 그만큼 짙기 때문일 터다.

작사가 김이나는 “가사만 좋아서는 노래가 히트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은 가사가 절대 허술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산울림의 ‘너의 의미’, 이문세의 ‘소녀’ 등 명곡이 꾸준히 리메이크되며 사랑받는 이유다.

‘낭만에 대하여’ ‘부산에 가면’ 등을 부른 가수 최백호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노래들은 가사가 아쉽다”고 했다. 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붙였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멜로디에 가사를 입히다 보니 가사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후배 가수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다.

누구나 상처받은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가사가 주는 위안과 감동은 세대와 언어, 국경을 초월한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반복해서 들으며 가사의 의미를 곱씹는 노래가 있다.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픽스 유(Fix You)’다.

밴드는 세월호 참사 3주기인 2017년 4월 16일 열린 내한 공연에서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불렀다. “상실을 노래한 곡이자,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노래다. 한국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면서다.

밴드 리더 크리스 마틴이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전 부인 기네스 펠트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은 10여년의 세월과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세월호 유족을 포함한 온 국민의 비통한 마음을 달래줬다. 밴드는 수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지만, 전 세계 투어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곡은 여전히 ‘픽스 유’다. 상실과 고통을 견뎌내며 고된 삶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사랑했지만 허탈한 결말을 맞을 때/ 그보다 아픈 게 있을까/ 빛이 널 집으로 인도하고 따스하게 감싸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