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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다" 가족도 경악…'F1 전설' 10년만에 인터뷰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고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 거리의 한 가판대에 독일 주간 타블로이드지 악투엘레의 최신호가 진열돼 있다. 악투엘레는 독일 F1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10년 만의 단독 인터뷰처럼 보이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사실은 대화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짜 인터뷰 기사였다. EPA=연합뉴스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 거리의 한 가판대에 독일 주간 타블로이드지 악투엘레의 최신호가 진열돼 있다. 악투엘레는 독일 F1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10년 만의 단독 인터뷰처럼 보이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사실은 대화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짜 인터뷰 기사였다. EPA=연합뉴스


포뮬러원(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꼽히는 미하엘 슈마허(54·독일)가 심각한 스키 사고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주간지에 드러낸 심경이다.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알고 보니 실제 인터뷰가 아니라 대화형 인공지능(AI)에 묻고 답한 결과물로 밝혀졌다. 희대의 낚시성 기사에 슈마허의 가족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나서자, 기사 게재를 승인한 편집장이 해고됐다. 

獨 잡지, 슈마허 AI 인터뷰 편집장 해고

22일(현지시간) dpa·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주간 타블로이드지 악투엘레를 보유한 푼케미디어그룹은 전날 밤 홈페이지에 “악투엘레 최신호에 게재된 슈마허 관련 보도에 대해 사과한다”면서 “지난 2009년부터 악투엘레 편집장을 맡아 온 안네 호프만은 즉각 해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앙카 폴만 푼케미디어그룹 전무이사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이 기사는 절대 나와서는 안됐다”면서 “독자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저널리즘의 기준을 결코 충족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앞서 지난 15일 발간한 악투엘레 최신호 표지에는 웃고 있는 슈마허 사진과 함께 ‘슈마허와의 첫 인터뷰’, ‘세계적인 화제’ 등의 문구가 달려 있었다. 2페이지짜리 기사는 슈마허와 대화한 듯 구성됐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여성이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미하엘 슈마허와의 가짜 인터뷰가 실린 독일 주간지 악투엘레의 최신호를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 여성이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미하엘 슈마허와의 가짜 인터뷰가 실린 독일 주간지 악투엘레의 최신호를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고 이후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끔찍한 시간이었다. 너무 심하게 다쳐서 혼수 상태로 몇 달 동안 누워있었다.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혼자 설 수 있고, 천천히 몇 걸음도 걸을 수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지난 세월에 대해 매우 슬퍼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상황이 때때로 나빠지는 것을 견뎌야 한다. 가족이 나를 지지하고 내 곁에 굳건히 서 있다.”

다만, 마지막에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이름이 없었다. 그리고 슈마허나 그의 가족 중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며 이 인터뷰는 AI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고 적혀있었다. 알고 보니 유명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형 AI(챗봇)’ 사이트인 ‘캐릭터.ai(character.ai)’에서 슈마허 챗봇과의 대화를 옮겨 놓은 것이었다. 

'F1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캐릭터 AI 챗봇이 질문을 넣으면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 캐릭터.ai 홈페이지 캡처

'F1 전설' 미하엘 슈마허의 캐릭터 AI 챗봇이 질문을 넣으면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 캐릭터.ai 홈페이지 캡처

악투엘레 측은 “이 웹사이트에선 AI가 답변을 제공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들도 나오는 걸 보면 누군가 위키백과(이용자 참여 사전)처럼 정보를 입력했을 것”이라면서 “슈마허나 그의 가족 혹은 간호사 등이 입력했을까? 그 대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처럼 들린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웹사이트에는 ‘캐릭터가 말하는 모든 내용은 만들어진 것이니 전부 신뢰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고 안내돼 있다. 

AI 챗봇 대화를 마치 10년 만의 첫 인터뷰처럼 묘사한 기사에 경악한 슈마허 가족은 지난 20일 악투엘레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F1 팬들은 소셜미디어(SNS)에 “언론으로서의 품위가 부족한 수치심만 가득한 기사”라고 비판했다. 도이치벨레(DW)는 이번 논란은 “AI가 언론의 저널리즘에 가하는 위험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AI를 이용한 낚시성 기사가 앞으로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뇌수술’ 슈마허 칩거, 추측 보도 난무

미하엘 슈마허가 지난 2012년 10월 일본 스즈카시 서킷 기자회견에서 F1 은퇴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하엘 슈마허가 지난 2012년 10월 일본 스즈카시 서킷 기자회견에서 F1 은퇴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슈마허는 지난 1991년 F1에 데뷔한 뒤 7차례 종합우승을 차지해 F1의 전설로 불린다. 보유 재산은 약 9억 달러(약 1조2000억원)로 알려졌다. 그는 은퇴 이후인 지난 2013년 12월 프랑스 알프스 메리벨 스키장에서 아들과 스키를 타던 중 코스를 벗어나 추락하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후 뇌수술을 받고 스위스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아내 코리나 슈마허는 그의 건강 상태와 근황 등에 대해서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21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상태가 “이전과 다르다”라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코리나는 “남편이 가능한 한 계속 사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마허와 막역한 사이인 장 토드 전 페라리 최고경영자(CEO)도 자주 슈마허를 보러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년 전 “슈마허의 집에서 함께 F1 경기를 봤다”면서 “그는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달 초에는 “슈마허의 상태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상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슈마허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쓴 매체를 향한 경고로 해석된다. 

독일 주간지 악투엘레가 지난 15일 발간한 최신호 겉표지. 포뮬러원(F1) 레이싱의 '원조 황제' 미하엘 슈마허를 은둔생활 약 10년 만에 최초로 접촉해 인터뷰한 것처럼 홍보했지만, AI챗봇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악투엘레 홈페이지 캡처

독일 주간지 악투엘레가 지난 15일 발간한 최신호 겉표지. 포뮬러원(F1) 레이싱의 '원조 황제' 미하엘 슈마허를 은둔생활 약 10년 만에 최초로 접촉해 인터뷰한 것처럼 홍보했지만, AI챗봇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악투엘레 홈페이지 캡처

특히 악투엘레는 수차례 슈마허와 관련한 낚시성 기사를 게재해 논란이 됐다. 지난 2014년 표지엔 슈마허 부부 사진과 함께 ‘깨어나다’라고 썼지만, 기사는 이와 무관하게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어떤 사람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듬해에는 코리나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는 제목이 표지에 실렸는데, 내용은 슈마허의 딸 지나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였다. 지난 2016년에는 “슈마허는 더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적어 마치 사망한 것처럼 묘사했다. 슈마허 가족은 지난 2015년 허위 보도를 일삼는 악투엘레를 상대로 5만유로(약 7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지난 1979년 처음 발행된 악투엘레는 유명인들의 삶과 요리·문화 등을 주로 다루는 여성잡지다. 지난해 월 평균 발행 부수는 약 20만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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