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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1% 못 채웠다…장애인생산품 구매, 왜 지켜지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행복 소비 캠페인 2023년 장애인 생산품 장터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행복 소비 캠페인 2023년 장애인 생산품 장터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직원이 봉투도 접고 포장도 직접 했고요…” “직원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결혼선물로 받으면 다들 감동해요. 한 번만 보고 가세요.”

장애인의 날인 20일 ‘2023년 장애인생산품 전시·홍보 장터’가 열린 서울 중구 청계광장. 양옆으로 각각 8개씩 늘어선 전시 칸을 지나갈 때마다 장애인이라는 말보다 직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왔다. 중증 장애인이 작업 공정에 참여한 물티슈 판촉에 나선 한 사회복지사는 “직원(장애인)은 물티슈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 간단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장터에는 전국 50여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참가해 김·도마·돈가스·복사용지·양말·물티슈·휴지 등 260여개 장애인생산품이 전시·판매됐다. 직접 만든 디퓨저를 팔러 나온 40대 중증장애인 상문(가명)씨는 “기분이 좋다”라며 웃었다.

우선구매 비율 1% 왜 안 지키나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만들어지는 장애인생산품의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전시·홍보 장터를 2016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일반 작업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환경에서 직업 훈련 등을 받는 곳이다. 2019년 683개소에서 2022년 792개소로 최근 4년간 15% 증가했다. 이용 장애인도 같은 기간 1만9056명에서 2만819명으로 9.2% 늘었다. 이들 중 90%(지난해 기준)는 중증장애인으로 파악됐다.

복지부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중증장애인생산품법)에 따라 이들 시설 생산품에 대한 우선구매를 지원하고 있다. 우선구매 제도는 중증장애인생산품을 공공기관이 연간 총 구매액의 1% 이상 사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20일 '2023년 장애인생산품 전시·홍보 장터'에 나온 구로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 직원들. 사진 채혜선 기자

20일 '2023년 장애인생산품 전시·홍보 장터'에 나온 구로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 직원들. 사진 채혜선 기자

이날 열린 장터에서 인터뷰에 응한 시설 10곳 모두는 “공공기관 구매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직업재활센터 관계자는 “손이 느린 20명 장애인이 대량 생산으로 값이 저렴한 민간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보호작업장 관계자는 “상품을 사면 뿌듯함까지 주기 때문에 재구매도 많이 하지만 제한된 선생님(사회복지사)이 판로 개척이나 홍보까지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최현주 서울 구로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 사무국장은 “여성친화기업·사회적기업 등 각종 정부 인증이 많아 시장은 이미 포화”라며 “장애인생산품 품질에 대한 편견 등이 있어 공공기관 구매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선구매 대상 공공기관 1042곳의 총 구매액 대비 비율은 1.01%로 집계됐다. 법정 의무 비율(1%)을 턱걸이로 넘겼다는 얘기다. 전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1%를 넘는 곳은 ‘공기업 등’(1.14%)으로 분류된 공기업·준정부기관·지방공기업 등밖에 없었다. 국가기관(0.92%)·지자체(0.89%)·교육청(0.96%)·지방의료원(0.58%)은 기준 1%를 채우지 못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2022년 실적. 자료 복지부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2022년 실적. 자료 복지부

법정 의무 비율을 지키지 않은 497곳(47.7%)을 보면 행정부 중에서는 교육부(0.98%)·국토교통부(0.62%)·기획재정부(0.19%)·여성가족부(0.75%)·외교부(0.97%)·통일부(0.92%)·해양수산부(0.37%)·행정안전부(0.91%)·환경부(0.28%) 등이 기준 미달로 파악됐다. 광역 지자체 중에선 전남도(0.41%)와 강원도(0.43%)가 하위권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 부처나 지자체가 많이 사야 하지만, 법정 의무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매기는 등 중증장애인생산품법에 제재 근거가 없어 강제력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공기업은 우선구매 실적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선 구매율이 높게 나온다고 복지부는 보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의무 구매 비율을 법정 하한선만 간신히 넘기면서 복지부는 올해 차관회의 때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 비율을 올려달라는 내용을 안건으로 올렸다고 한다. 또 지난해 구매율이 1%에 미달한 기관에 대해서는 오는 5월부터 방문 컨설팅을 통해 우선구매를 장려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처별로 구매하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리고 독려하는 게 (현재로써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동주 우석대 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중증장애인생산품법에 강제력이 없어 지자체장 등 장(長)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라며 “그들이 관심을 갖고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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