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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만 지키면 돼"…김수한무 뺨치는 아파트 25자 이름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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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문주 투시도. [사진 롯데건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현대아파트 문주 투시도. [사진 롯데건설]

서울시가 길고 복잡한 아파트 이름을 순화하려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 중인 가운데 여러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2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사에서 열린 ‘공동주택(아파트) 명칭 관련 2차 공개토론회’에서다.

요즘 아파트 작명은 ▶지역명·랜드마크명 ▶건설사명 ▶브랜드명 ▶팻네임(pat name·애칭) 순으로 이뤄지는 게 많다. 예컨대 서울 은평구 수색동 한 아파트 이름은 DMC(랜드마크명)SK(건설사명)뷰아이파크(브랜드명)포레(팻네임)이다.

이와 같은 작명 방식에 대해 손창우 현대엔지니어링 책임은 “어느 순간 팻네임이 애초 의도와 다르게 변질하면서 각종 외래어가 나오고 있다”며 “이건 조합원·시공사·시민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공동주택 명칭 공청회 개최

서울시가 20일 개최한 공동주택 명칭 관련 2차 시민 토론회. 문희철 기자

서울시가 20일 개최한 공동주택 명칭 관련 2차 시민 토론회. 문희철 기자

실제로 전국에서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25자에 달한다.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1차(2차)’가 국내 최장이다. 수도권에선 경기도 파주시 ‘가람마을 10단지 동양엔파트 월드 메르디앙’과 경기도 화성시 ‘동탄 시범 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 반도 유보라’가 최장이다(19자).

서울에서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서초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배인연 개포1동 재건축조합장은 “우리 아파트는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현대건설)가 두 군데다 보니 양사 브랜드명(아이파크·디에이치)만 붙여도 8자였다”며 “작명을 시공사가 하다 보니 조합원은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건축·재개발 조합 관계자들은 시공사 건설사명과 브랜드명 중 하나를 아파트 명칭에서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김정우 서초신동아재건축조합장은 “아파트 명칭을 시공사가 제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공사 욕심이 들어가 있다”며 “시공사명을 제외하고 브랜드명과 지역명을 조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공사 생각은 다소 다르다. 손창우 책임은 “시공사는 공사하고 공사비를 받는 구조라 브랜드 욕심은 없다”며 “다만 우리 브랜드를 사용한다면, 형식·기준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라고 반박했다.

“7~10 내외로 간소하고 독특해야”

아름답고 부르기 편한 공동주택 명칭 위한 토론회 포스터. [사진 서울시]

아름답고 부르기 편한 공동주택 명칭 위한 토론회 포스터. [사진 서울시]

조합 측과 달리 시공사 측은 팻네임을 빼고 지역명과 브랜드명을 조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구명과 동명, 브랜드명을 조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나왔다(이영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의원).

반면 이름이 길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희원 서울시의회 의원(동작4)은 “아파트 명칭이 고유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독특한 이름을 작명하다 보면 아파트 이름이 길어질 수도 있다”며 “독특하면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름이 길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든 토론자는 서울시 등 지자체가 아파트 이름을 규제하는 것에 반대했다. 신민규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장은 “단지 명칭이 오남용되는 건 많지만 그렇다고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며 “다만 실제 동네 이름이 아니라 옆 동네 이름을 따다 쓸 때는 지자체가 규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향후 아파트 이름을 7~10자 한도로 간소하게 짓고, 작명 과정에서 지역성·고유성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형태로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이날까지 두 차례 수렴한 의견을 토대로 향후 아파트 명칭 관련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아름답고 부르기 쉬운 고유지명·한글을 담아내면 향후 국적 불명인 긴 아파트 이름이 촌스러워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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