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역 18개월인데, 공보의는 36개월…"시골에 의사가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공보의 진료 모습. 뉴시스

공보의 진료 모습. 뉴시스

강원도 화천군의료원은 지난 17일 내과 진료를 중단했다. 올해 내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신규 배치를 받지 못해서다. 현재 소아청소년과 등 다른 과 공보의가 기존 진료 환자에 약 처방만 하고 있다. 화천군의료원 관계자는 “발길을 돌리는 어르신이 왕왕 있다”며 “내과 전문의를 뽑고 있지만, 지역 특성상 채용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보의 부족으로 농어촌 의료 공백 가시화

2023년 신규 공보의 직무교육 모습. 뉴스1

2023년 신규 공보의 직무교육 모습. 뉴스1

공보의 복무 만료·신규 배치가 이뤄지는 이달 전국 곳곳에서 공보의(의과·치과·한의과) 수 급감에 따른 의료 공백이 가시화하고 있다. 올해 신규 편입된 공보의(1106명)가 복무 만료자(1290명)를 한참 밑돌면서 벌어진 문제다. 공보의는 의과·치과의사·한의사 면허 소지자가 군복무를 하는 대신 3년간 보건의료 취약지역 보건소·보건지소·공공병원 등에서 근무하게 하는 제도다.

현장에서는 핵심 인력으로 꼽히는 의과 공보의 수 감소가 문제로 지적된다. 의과 신규 편입 공보의 수는 2017년 814명에서 올해 450명으로 6년 만에 45% 줄어들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북은 도내 36개 보건지소에 의과 공보의를 배치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과 전남은 각각 39명과 23명씩 의과 공보의가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의과 공보의를 배치받지 못한 곳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보건의료 취약지역일수록 의료 접근성이 떨어져 공보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서다. 공보의 근무가 끝나면서 지난해 피부과에 이어 올해 성형외과가 폐과된 강원도 삼척의료원 측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전문의인 공보의 1명이 그 지역의 유일한 의료기관을 뜻하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의료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신규 배치된 공보의 가운데 유일한 내과 전문의 1명을 울릉군보건의료원에 배치했다.

115개 섬으로 이뤄진 인천 옹진군 북도 보건지소는 2명이던 의과 공보의가 이번에 1명으로 줄었다. 해당 보건지소 관계자는 “관내에 의료기관이 이곳 하나인 상황에서 공보의가 1명만 남아 주말이나 밤에 응급 대응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순회 근무 적지 않지만…헛걸음 이어져

공보의 수혈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 보니 공보의 한 명이 요일별로 여러 보건지소 등을 도는 순회 진료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보의 A씨는 “마을 이장을 통해 공보의가 오는 날짜를 어르신들에게 사전 공지한 후 환자를 모으는 방식으로 보건지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복지부는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순회 진료를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현장 목소리도 나온다. 공보의 방문 요일에 맞춰 월·수·금만 운영하는 경기도 화성의 한 보건지소 관계자는 “‘꼭 전화하고 오시라’고 이장·부녀회장에게 전달을 신신당부했지만 어르신 특성상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고 헛걸음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화성시 한 어촌계 주민은 “보건지소를 가는 분들은 그곳만 가는데 여는 날에만 맞춰서 아플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공보의 사이에서는 “번갈아가면서 진료 하다보니 진료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불만도 잇따르고 있다.

자료 보건복지부

자료 보건복지부

복지부는 공보의 업무활동장려금 지급 기준(월 90만~180만원)이 담긴 지침을 올해 처음으로 만드는 등 공보의 처우 개선에 나섰다. 또 운영 지침을 지난해 시 보건소 기준 ‘의과 2인 이내 배치, 인구 10.5만 이상 1인 이내 배치’에서 ‘의과 1인 이내 배치’ 등으로 변경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주변에 의료기관이 있으면 보건지소에 의사 없이 치과의사와 한의사만 배치한다. 있던 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지역민 항의가 있다”고 했다.

공보의 사이에서는 중장기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한 공보의는 “현역(18개월)보다 긴 공보의 복무 기간(36개월) 등 때문에 이미 주변에서는 카투사(KATUSA·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나 현역을 선택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공보의를 의료취약지에만 배치하다 보면 공보의 급감에 대한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정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공보의는 대한민국 의료 사각지대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며 “전문의 자격이 있는 공보의가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복무 기간 단축 등 그에 맞는 처우 개선이 이뤄진다면 지방 의료 붕괴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공보의 감소 원인을 의대 내 여학생 증가나 장기복무 부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확한 공보의 자원 감소에 대한 원인 분석이 이뤄져야 대책을 세울 것으로 본다”며 “하반기쯤 원인 분석 연구를 통해 중장기 추계를 세우고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