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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폭주하는 태영호 의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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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태영호 의원이 폭주하고 있다. “4·3은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난 사건”이라더니, 독도가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일본 외교청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화답 징표”란다. 며칠 전엔 “쓰레기(Junk) 돈(Money) 성(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 폭언을 하더니, 오늘은 “김구 선생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이용당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실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4·3 유족들이 망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그는 “어떤 점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자신의 망언을 북한의 역사교육으로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즉, 북한에서 4·3은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났다고 분명히 배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를 불 지른 게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이며, 3·1운동을 주도한 것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 모두에 김일성이 있었다고 가르칠 만도 하다. 하지만 얼마나 역설적인가. 북한 정권이 싫어서 여기에 온 이가 여전히 북한 정권의 말을 굳게 믿는다니.

“4·3은 김일성의 지시” 발언 논란
북 개입 없었다는 진상 조사 배치
북한 말은 믿어도 정부 말은 불신?
‘사과’를 가장한 2차 가해 아닌가

4·3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 그에 따르면 4·3에 김일성의 개입은 없었다. 그 시기에 북한은 남한 일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남로당 중앙당이 지시하거나 지도한 것도 아니다. 4·3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촉발된 국가폭력이라는 게 남한의 공식적 입장이다.

왜 남한 정부의 말을 못 믿고 북한 정권의 말을 믿는 것일까. 얼마 전 그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가들 사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빠졌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빠진 게 이승만뿐인가. 3·1운동을 주도했다는 김형직의 사진도 빠져 있다. 북한에서 3·1운동은 김형직이 주도했다고 ‘분명히’ 배웠을 테니, 그것도 항의하시라.

사실을 말하면 “4·3은 김일성 정권의 지시로 일어난 폭동”이라는 시각이야말로 당시에 미 군정과 남한의 군경이 죄 없는 제주도민을 학살하고, 또 그 만행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한 이유였다. 당시 제주도민을 학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북한정권이라면 치를 떨던 사람들, 즉 북에서 넘어온 서북청년단원들이었다.

서북청년단원들은 북에 대한 증오를 제주도민에게 투사하여 자신들이 북한에서 당한 일에 복수를 하려 했다. 그 가혹한 복수가 애먼 주민들에 대한 끔찍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그 학살로 가족을 잃은 4·3 유족들의 귀에 태영호 의원의 말이 어떻게 들렸겠는가. 또 북에서 넘어온 사람에게 2차 가해를 당했다고 느꼈을 거다.

고약한 것은 태영호 의원이 이 2차 가해를 ‘사죄’의 형태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대체 왜 태영호 의원이 사과해야 하는가. 일단 4·3은 김일성이 주도한 게 아니었다. 설사 그것을 김일성이 주도했다 한들, 그저 북한에서 태어나 외교관 생활을 했던 이가 대신 사과할 일은 아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게 무슨 ‘원죄’라도 되는가.

결국 그에게는 사과할 자격도, 사과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굳이 사죄하려 한다면, 거기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그는 ‘사죄’라는 형식을 빌려서 4·3 희생자들을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공산 폭도로 몰아붙이려 한 것이다. 자신은 교묘하다고 믿을지 모르나, 우리 눈에는 너무 빤한 방식으로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의 남다른 ‘북부심’(북한 자부심)이다. “북한을 모르는 사람들은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다.” 마치 북에 살았다는 것이 남한 사람들은 모르는 무한한 지혜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하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30년 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또 배운 게 그놈의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이다. 그 시절 정권에 이견을 가진 이들은 다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포섭된 이들로 간주되곤 했다. 그런 이들은 당시에 ‘용공(容共)’이라 불렸다. 태영호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이 결국 그거 아닌가. ‘김구는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용공분자다.’

4·3 희생자의 명예 회복은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용공분자란 말인가. 당에서도 골치 아파하는 눈치다. “당 최고위원이면 당 전체의 승리를 위해 ‘선당후사’까지는 아니라도 기본 역할은 해줘야 하는데 벌써 개인 정치를 위해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당의 일각에선 “내년 총선이 벌써 걱정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당 대표가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과연 그게 통할지 모르겠다. 이미 그 스킬로 그는 초선임에도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정치적 효용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당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내 공천은 따놔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가 지도부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당이 70년대로 퇴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체 선거는 어떻게 치르려는지.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