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귀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의 제자 증자는 “마지막 가시는 상례를 삼가는 자세로 치르고 먼 조상까지도 추모하면(愼終追遠:삼갈 신, 마침 종, 쫓을 추, 멀 원), 백성들의 덕이 두터운 데로 귀결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자님 당년에도 ‘이제 다 끝났다’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례를 소홀히 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오늘날에는 소홀하다 못해 심지어 상주 스스로 ‘호상(好喪:복을 누리며 오래 산 사람의 상)’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게다가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뿐,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추모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歸 : 돌아갈 귀, 厚 : 두터울 후. 두터움으로 귀결되다. 35x75㎝.

歸 : 돌아갈 귀, 厚 : 두터울 후. 두터움으로 귀결되다. 35x75㎝.

‘덕(德)’은 ‘득(得:얻음)’이다. 자신이 행한 결과로 인해 얻는 것이 바로 덕인 것이다. 상례를 쓰레기 치우듯 소홀히 하고, 추모를 귀찮게 여기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다.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무엇을 얻더라도 실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백성들의 덕(얻음)이 두터운 데로 귀결되지 못하고 경박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살기 힘든 각박한 세상이 되고 만다. 상례를 슬픔으로 치르고 먼 조상까지도 추모하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 자의 생명을 중히 여기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금년 현충일엔 놀러 갈 계획일랑 아예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의 덕 즉 ‘얻음’을 두텁게 하는 길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