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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틀렸다"던 野 참패 1년뒤…與도 고질병 또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총선을 1년 앞두고 여권 지지율이 한 달 넘게 하락세를 이어가자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여론조사 불신론을 꺼내 들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제기하는 여론조사 불신론에 전문가들은 “데이터를 외면하는 쪽은 늘 선거에서 졌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7일 공개된 리얼미터·미디어트리뷴 여론조사(10~14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주 대비 2.8%포인트 떨어진 33.6%,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3.1% 떨어진 33.9%를 기록했다. 한 달여 전인 3월 1주차 조사(2월 27일~3월 3일)와 비교했을 때 국정 지지율은 9.3%포인트, 국민의힘 지지율은 10.4%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이런 내림세는 자동응답(ARS) 방식의 리얼미터뿐 아니라 다른 여론조사도 비슷하다. 전화면접 방식의 한국갤럽이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지난 11~13일)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7%, 국민의힘 지지율은 31%였다. 3월 1주차 대비 각각 9%포인트·8%포인트 하락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한국갤럽 조사가 발표된 14일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민심을 겸허하게 보고 있다”라면서도 “어떤 여론조사를 믿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구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표본 추출이나 질문지 구성이 과학적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갖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참고하는 경우도, 참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일엔 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정진석 의원(5선)이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자꾸 무슨 지지도 갖고 그러는데 지지도엔 업 앤 다운(Up&Down)이 있다”며 “요즘 여론조사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난 그렇게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도 지난달 30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론조사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참석자에 따르면 김 대표는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을 앞선 A 조사업체를 콕 집으며 “이제야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나왔다. 다른 곳은 편향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A 업체를 제외한 대다수 조사에선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다소 밀리는 상황이었다.

여권의 문제 제기에 민주당은 지난 15일 “잘 나오면 정당한 여론조사고 잘 안 나오면 의구심이 드는 여론조사인가”(강선우 대변인)라는 논평을 냈다. 강 대변인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고 반성을 해야지 왜 여론조사와 싸우려 하느냐”며 “정 여론조사에 의구심이 들면 윤석열 정부의 장기인 압수수색으로 대응하시라”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비판이 내로남불이자 여야 모두의 고질병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역시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나오자 “여론조사 통계 다 틀리다”(이재명 대표)는 주장을 했다. 2021년 4·7 재ㆍ보궐 선거를 앞뒀을 때도 “여론조사에 속으면 안 된다”(이해찬 전 대표)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두 선거 모두 여론조사대로 민주당이 참패했다.

지난해 5월 25일, 그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천 계양구 장기동 아파트 단지에서 유세하는 모습. 당시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였던 이 대표는 각종 유세장에서 “여론조사를 믿지 말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지난해 5월 25일, 그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천 계양구 장기동 아파트 단지에서 유세하는 모습. 당시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자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였던 이 대표는 각종 유세장에서 “여론조사를 믿지 말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였던 홍준표 대구시장도 불신론을 펴며 “지방선거가 끝나면 이런 여론조사기관은 폐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당시 결과 역시 한국당의 참패로 끝났고 홍 시장은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전문가들은 “일부 여론조사는 객관성이 결여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한규섭 서울대 교수)라면서도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외려 정치 혐오만 조장한다”고 말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도 “여론조사 불신론이나 조작론은 집토끼마저 떠날 때 꺼내 드는 최후의 카드이자 위기의식의 발로”라며 “데이터를 무시해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고, 무책임·무능 이미지만 부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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