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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끝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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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아주 오래전에 보니 엠(Boney M)이라는 그룹이 부른 ‘바빌론 강(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바빌론 강가에서 우리는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어”라고 시작하는 가사는 성경의 시편 137편에서 따온 것인데, 멜로디가 신이 나서 젊은 시절에 자주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멜로디는 신나지만 사실 노래에 얽힌 사연은 그렇게 신나지 않는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에도 이와 비슷한 노래가 있다. 베르디의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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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디아스포라의 노래이다. 디아스포라는 자의건 타의건 살던 땅을 떠나 영원히 타향을 떠도는 집단을 의미하는 말인데, 근 2000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하며 살았던 유대인들이야말로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절까지 최고의 번영을 누렸지만,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을 받으며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 수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이런 유대인의 시련을 그린 것이다. ‘나부코’는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의 이름의 이탈리아식 발음인 나부코도노소르를 줄인 것이다.

바빌론에 잡혀 온 유대인들은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고향의 요르단 강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가라, 그리움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에는 고향에 대한 유대인들의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물론 지금 그렇게 오랜 세월 이국땅을 떠돌던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를 세우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바로 그들에 의해 쫓겨난 또 다른 디아스포라가 낯선 땅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