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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대학병원 분원 설립, 지방 의료 무너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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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의화 전 국회의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경제성장 수준에 비해 비교적 빨리 시작되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 수준이던 1977년 직장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실질적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의료보험은 조합주의 형태로 이어져 오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 현재 같은 통합주의로 전환돼 국민건강보험 체제가 완성된다. 이것은 건강보험료가 세금화되고 정부 주도형 건강보험 체계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비현실적 수가 정책과 행위별 수가, 보험료 부과 체계 등 정책 기조는 온존한 상태였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개혁 조치 없이 의료보험을 하나로 묶어버린 통합주의를 채택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겨났다. 권역별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고 낮은 보험수가에 대응한 의료 공급자들의 생존을 위한 행태들로 인해 의료 생태계 전체의 왜곡이 가파르게 진행된 것이다. 흉부외과 전문의는 씨가 마르고, 개두술을 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는 등 전국에서 의료 생태계 붕괴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인당 GDP는 이제 3만 달러를 넘었지만, 그에 상응한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선진화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익 올리려 양적 팽창에 몰두
2차 종합병원 확충 서둘러야
대학은 의학자 양성에 집중을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정부는 먼저 건보 재정 확충 노력과 위험성·난이도 등에 따른 보험수가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개원 억지책 마련, 2차 종합병원 지원 강화, 대학병원들의 문어발 확장 방지, 권역별 의료전달체계 보완 정립, 요양병원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이들은 모두 상호 연관돼 있다.

그동안 정부는 선진 의료 구축은 대학병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지원을 대학병원에 집중해 왔다. 그로 인해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수익에 열을 올리는 한 의료 생태계는 희망을 얘기하기 어렵다. 의과대학 부속 대학병원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양적 팽창에만 몰두해 왔으며 정부는 이를 부추겨 왔다. 의료인이나 국민도 이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제 잠시 멈추고 무엇이 의과대학의 존재 이유인지 심사숙고해보자. 필자는 각 대학이 현재의 분원들을 매각하여 그 재정으로 국제 수준의 연구와 훌륭한 의학자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지방 국민이 빅5 병원 등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느라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아는가. 더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선진 의료는 허리 역할을 할 2차 종합병원이 중심이 될 때 가능하다. 그간 외면해온 2차 종합병원 육성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빅5 병원의 수준이 아니라 접근성이 좋은 2차 종합병원의 의료 수준이 높아질 때 국민이 높은 의료 수준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선진 의료는 2차 종합병원이 단단한 중심이 되고, 3차 대형병원들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때 완성될 수 있다. 전문 인력, 시스템, 각종 현대식 의료 장비는 기본이다. 여기에 각 진료과의 유기적인 협진과 환자를 인격체로 돌보는 정성까지 더해져야 한다. 가벼운 질환은 의원급에서 진료케 하고, 나머지는 2·3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에서 질환에 맞게 담당하면 전반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정부는 또 초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요양 정책을 시급히 정립해야 한다. 더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쇠약해진 홀몸 노년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요양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경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처럼 자신들이 살아온 지역·가족들과 연계해 생활하고 행복하게 인생을 마무리하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끝으로 보상액 상한선(Capitation)을 정할 필요가 있다. 의료 분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위험한 내·외과적 시술이나 수술을 기피하는 행태를 비난만 하기 어렵다. 필자는 20년의 의정 활동 중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사의 보상액 한도를 정하고 건보가 최소 70%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가 사회주의적 통제를 하는 만큼 보상액의 일정 부분도 책임져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선 정부 내 종합 대책을 세우고 추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어려운 길이지만, 선진 의료 구축이 의료 생태계 복원의 유일한 해법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화 전국회의장·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