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어릴 때부터 내부공익신고 가르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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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최근 LG 트윈스 박동원 선수가 지난해 KIA 타이거스 시절 FA 계약 추진 과정에서 단장으로부터 뒷돈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박 선수의 내부 고발은 힘든 결정이었다. 내부 고발은 잘못을 한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내가 피해 본 것도 없는데 굳이 나설 필요를 못 느낄 수 있으며,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힘들다.

좁은 프로야구계에서 단장과 선수, 감독과 선수로 10년 넘게 인연을 맺은 사이에서 선배의 비리를 실명을 밝히며 공개하기까지 박 선수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고뇌했을지 짐작이 간다. 또 뒷돈 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하였고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 박 선수 입장에서는 피해 본 게 없으니 새 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만 관심을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2, 3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했다”고 밝힌 인터뷰에서 그의 진정성을 볼 수 있었다.

비리 모른체하는 사회는 부패
박동원 선수의 내부폭로 용기
학폭도 친구들이 먼저 알려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야구계에서는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탈락, 유망한 젊은 선수의 미성년자 성착취물 제작 혐의에 따른 퇴출 등 많은 악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야구계를 위해 조용히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며 비난하거나, 선배를 내부 고발한 후배라는 낙인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한 박 선수의 고발은 야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의 용기는 비리 적발과 함께 예방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영국에 “블라인드 뒤 할머니를 조심하라”라는 말이 있다. 할머니들이 집에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보다가 공동체 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목격하면 바로 신고하자, 동네 사람들이 적발되지 않도록 법을 어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의 비리 적발이 예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내부공익신고는 사후 적발보다 사전 예방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부패·공익침해 행위뿐 아니라, 청탁금지법·이해충돌방지법·공공재정환수법에서 규정한 위반 행위를 신고했을 경우 비밀 보장, 신변 보호, 신분 보장, 책임 감면 같은 보호와 함께 보상금·포상금·구조금 같은 보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법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도 체계적이고 강력한 보호·보상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내부공익신고를 보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뒤떨어진 편이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의 학교폭력을 담임교사에게 알리는 행위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고자질처럼 여겨지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에서는 같은 병원 의사들이 선배 의사의 불법의료행위를 고발한 의사를 대놓고 비난하고 시비를 건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굳이 신고해서 그 사람들을 쫓아낼 필요가 없지 않았냐”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불만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다.

한국처럼 정과 의리,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욱이 스포츠계나 교육계·경찰·검찰·군 같은 선후배·동료 관계가 밀접하고 폐쇄적 조직에서는 모른 체하고 지나가는 게 미덕이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 조직을 깨는 배신자·배반자로 몰리곤 한다. 또 법적 보호가 있더라도 왕따 등 이런저런 보복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일전에 초등학생 딸아이가 보던 이슈 토론 책에서 “친한 친구가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격했다. 어떻게 하겠느냐” 질문에 찬반 의견이 적혀 있었다. 찬성은 “사소한 잘못이 아니고 학교폭력이니 당연히 담임 선생님께 알려야 한다”였고, 반대는 “친구가 처벌받을 수 있고, 우정이 깨질 수 있으니 그냥 모른 체해야 한다”였다. 아이들조차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왕따 등으로 학생들의 극단 선택이 이어질 때 대통령이 어린이날 기념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어린이들이 그러한 왕따에 대해 선생님께,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자세입니다.” 내부공익신고는 적발보다 예방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릴 때부터 그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질 때 부정과 비리, 불공정에서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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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