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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원전 멈춘 독일…에너지 위기에 결국 석탄발전 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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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 15일(현지시간)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친(親)원전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독일의 탈(脫)원전 행보에 논쟁이 일고 있다. 

반핵 활동가들이 15일 독일 남서부 바뎀뷔르템베르크주 네카베스트하임에 있는 원전 앞에서 가동 중단에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핵 활동가들이 15일 독일 남서부 바뎀뷔르템베르크주 네카베스트하임에 있는 원전 앞에서 가동 중단에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마지막 남은 원전 3기 폐쇄

AP·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15일 자정(한국시간 16일 오전 7시) 원자력법에 따라 엠스란트, 네카베스트하임2, 이자르2 등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로써 지난 1961년 원전 가동을 시작한 독일은 62년 만에 탈원전 국가가 됐다. 현재 26기 원전이 수년째 해체 중인 가운데 마지막 원전 3기의 해체 작업은 2040년대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 원전 3기가 가동을 멈추자 탈원전에 찬성하는 반핵 운동가들은 베를린, 뮌헨 등에 모여 환호성을 질렀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독일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 세상 어떤 원전에서도 재앙적인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탈원전은 독일을 더욱 안전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은 지난 1961년부터 최대 36기 원전을 가동해 전체 전력의 최대 3분의 1가량을 원전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난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으로 원전 사용 중단 요구가 거세졌고, 2000년대 들어 정치권에서도 탈원전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과 반핵 운동에 앞장선 녹색당 등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원전을 통한 전력 생산 가능 규모 상한 등을 규정하면서 2020년께 탈원전이 이뤄질 전망이었다.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 등이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2005~2021년 재임)를 내세워 탈원전에 반대했지만,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2022년 말까지 탈원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중단되는 등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이 연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의 탈원전 결의는 끝까지 지켜졌다.

전력난에 탈원전 반대 여론도 많아 

지난 14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란츠후트 인근 에센바흐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원전은 15일 폐쇄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14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란츠후트 인근 에센바흐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원전은 15일 폐쇄됐다. AFP=연합뉴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위기가 더욱 커지고 있어 에너지 안보 위험이 우려된다고 도이치벨레(DW)가 전했다. FDP 대표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내 마음대로라면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기존 원전을 유지하겠다”고 전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독일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된 에너지 공급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혹독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일부 국가에선 전력난에 대응하는 한편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친원전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은 지난해 말 원전 축소 정책을 뒤집고 원전을 신설하고 원전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예정이었던 벨기에는 최신 원전의 가동기한을 2035년까지 연장했다. 스웨덴·영국·네덜란드·폴란드·체코 등은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도 새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다만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등은 이미 탈원전한 상태이고, 원전을 아예 가동하지 않은 국가도 많다. 

독일 내에서도 전기세 등이 크게 오르면서 탈원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르사연구소가 발표한 지난주 조사에서 응답자 중 3분의 2는 원전 수명을 늘리거나 원전 재가동을 원한다고 답했다. 폐쇄를 찬성한 비중은 28%에 그쳤다. 피터 마투셰크 포르사연구소 분석가는 “에너지 공급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분간은 석탄 등 화석연료 의존

지난달 16일 독일 브란덴부르크 슈프레나이세 지구의 옌슈발데에 있는 화력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6일 독일 브란덴부르크 슈프레나이세 지구의 옌슈발데에 있는 화력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은 지난해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었던 만큼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리고 탈원전으로 인한 에너지 공백을 풍력·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독일 내 사용 전력의 44%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었는데, 오는 2035년까지 100% 확보할 계획이다. 미란다 슈뢰어스 뮌헨공대 환경·기후정책 교수는 CNN에 “탈원전이 재생에너지의 성장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완전히 확보하기 전까지의 에너지 공백이다. DW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석탄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석탄은 지난해 독일 내 사용 전력의 30%를 차지했다. 독일은 지난해 7월 러시아의 가스 공급 감축에 대응하기 위해 예비전력원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했다. 탈원전까지 이뤄지면서 국제 에너지싱크탱크 엠버는 독일이 오는 2030년 유럽연합(EU)에서 가장 큰 석탄화력발전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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