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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붙잡혀 노동단련대 보내진다…北 청년 단속 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월 7일 "화창한 봄 계절을 맞아 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봄철 옷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봄철에 여성들은 미색, 연청색, 연록색, 연분홍색 등 주로 여러가지 밝은 색깔로 조화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으며 남성들도 연회색, 연청색, 회색과 같이 밝은 색깔의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라고 권장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월 7일 "화창한 봄 계절을 맞아 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봄철 옷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봄철에 여성들은 미색, 연청색, 연록색, 연분홍색 등 주로 여러가지 밝은 색깔로 조화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으며 남성들도 연회색, 연청색, 회색과 같이 밝은 색깔의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라고 권장했다. 노동신문=뉴스1

최근 북한 당국이 청년들의 ‘사상 이완’을 단속한다며 옷차림 단속의 강도와 처벌 수위를 기존보다 더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옷차림을 ‘날라리풍’으로 규정하고 노동단련대로 보내는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인데, 드라마를 포함한 한국 문화 소비를 강력히 규제하는 최근의 북한 내부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최근 봄철을 맞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규찰대가 길거리 곳곳에서 청년들의 ‘이색적인 옷차림’에 대한 단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최근 '의복 현대화'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는’ 올바른 옷차림과 머리단장을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는 다소 자유롭고 편한 옷차림은 모두 '이색적인 옷차림'으로 낙인을 찍어 처벌을 하는 분위기다. 청년동맹을 통한 단속을 해서 적발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노동단련대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인권증진센터에 따르면 노동단련대는 재판소에서 노동단련형(6개월 이상 1년 이하)을 선고 받은 자 또는 검사에 의해 노동단련처벌(최대 6개월까지)을 부과 받은 자를 수용하는 곳이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이전에는 청년동맹에 불려 다니며 비판서나 몇장 쓰면 끝났는데 최근에 처벌이 강화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월 19일 지방공업성 피복연구소 등에서 지난해 열렸던 '여성옷전시회-2022' 성과와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패션 모델들이 등장한 의복 현대화 설계자료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월 19일 지방공업성 피복연구소 등에서 지난해 열렸던 '여성옷전시회-2022' 성과와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패션 모델들이 등장한 의복 현대화 설계자료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실제 청년동맹 규찰대에 붙잡혀 단속됐다는 사례도 여럿 전해진다. 단발머리의 한 북한 여성은 손목뿐만 아니라 팔 부분이 상당 부분 드러나는 검은색 세로줄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고 검은색 치마로 보이는 하의를 입고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남한에서는 봄‧여름철에 길거리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차림임에도 청년동맹 규찰대에 의해 ‘이색적인 옷차림’으로 규정되고 강제로 촬영까지 당했다.

북한 당국은 이때 촬영한 여성의 사진을 활용해 강연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했다.

한 소식통은 “청년들은 옷차림에도 사상이 있는가. 내 돈 주고 내가 산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하고 걸리면 단련대까지 가야 하니 사는 게 너무 숨 막힌다”며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면 뇌물을 고이고(‘뇌물을 바친다’는 뜻의 북한 말) 입어야 하니 청년들은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력한 단속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뇌물을 받고 처벌을 면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20대 북한 여성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청년동맹 규찰대의 단속 대상이 됐는데, 1000위안(한화 약 19만원~20만원)을 뇌물로 바치고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다른 소식통은 “청년들의 부르주아 사상을 뿌리 뽑는다는 명목으로 옷차림을 단속하고 있으면서, 뇌물을 받고 풀어 주고 있으니 과연 무엇을 위한 단속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월 19일 지방공업성 피복연구소 등에서 지난해 열렸던 '여성옷전시회-2022' 성과와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패션 모델들이 등장한 의복 현대화 설계자료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월 19일 지방공업성 피복연구소 등에서 지난해 열렸던 '여성옷전시회-2022' 성과와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패션 모델들이 등장한 의복 현대화 설계자료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남한 드라마‧남한말 금지” 北 당국 방침 연장 선상…“적발 시 강력 처벌”

이러한 상황은 통일부가 지난 3월 30일 공개한 ‘2023 북한 인권보고서’에 담긴 북한 당국의 최근 방침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한국 드라마 등 각종 영상 콘텐트 소지 행위를 단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콘텐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옷차림과 생활방식까지 단속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북한 당국이 몸에 붙는 바지 등 ‘서양식 날라리풍 옷’, 검은색 이외의 색으로 염색한 머리 등 ‘서양식 머리 모양’을 단속하고 있다는 탈북민들의 증언도 담겼다. 한 탈북민은 “여성은 귀밑 한 뼘 정도 머리, 남자는 앞머리가 눈을 덮지 않아야 한다”고 증언했다.

북한 당국은 특히나 남한 말을 쓰는 것이 포착되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앞서 북한은 남한말을 쓰면 6년 이상의 징역형, 남한말투를 가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는 ‘괴뢰(남한을 비하하는 표현) 말투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이를 다양한 형태로 유포하는 사람에게 6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됐다. 또 ‘남한말을 남에게 가르치거나 남한말 또는 남한 서체로 쓰인 표현물을 유포한 이는 1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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