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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한 번만 더 돌자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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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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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1936) 중에서)

피겨 스케이팅 담당 기자, 엄밀히 말해 김연아 전담 기자가 된 건 2005년 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김연아가 피겨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피겨에 관해 배워야 했다. 문제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가 없어 참고할 예전 기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찾아보고 물어가며 독학했다.

문득 궁금했다. 피겨는 만점이 얼마지. 종종 연락하던 국제심판에게 물었다.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간이 퀸튜플(5회전) 점프를 뛴다면, 그 이상 뛰는 건 불가능할 테니. 그쯤이 만점 아닐까요. 뛸 수는 있을까.”

지난해 말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점프 연기를 펼치는 말리닌. 그는 쿼드러플 악셀 점프를 뛴 유일한 선수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말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점프 연기를 펼치는 말리닌. 그는 쿼드러플 악셀 점프를 뛴 유일한 선수다. [AFP=연합뉴스]

피겨의 역사는 점프의 역사다. 6종의 점프(오일러 제외) 중 처음 시도된 게 역설적으로 가장 어렵다는 악셀이다. 1882년 노르웨이의 악셀 파울센이 처음 뛰었다. 명칭도 그의 이름을 땄다. 살코(1909)-루프(1910)-러츠(1913)-토루프, 플립(1920년대) 점프가 뒤를 이었다. 처음엔 싱글(1회전) 점프였고, 점차 회전수가 늘었다. 더블(2회전)이 1920~40년대, 트리플(3회전)이 1950~80년대에 등장했다. 급기야 1988년 캐나다의 커트 브라우닝이 쿼드러플(4회전) 시대를 열었다.

최근 피겨 세계선수권대회 중계를 보다 깜짝 놀랐다.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딴 미국의 일리야 말리닌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 쿼드러플 악셀이 있는 거였다. 악셀은 다른 점프보다 반 바퀴 더 돈다. 즉, 쿼드러플 악셀은 4.5회전 점프다. 20년 전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사실상 만점이라 할 5회전 점프가 가시권에 들어왔구나’. 이날 말리닌은 성공하지 못했고, 은메달은 차준환에게 갔다. 사실 말리닌은 지난해 다른 대회에서 쿼드러플 악셀을 피겨 역사상 처음 성공했고,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 역사에 ‘벽’으로 불린 기록이 좀 있다. 그중 하나가 육상 남자 1마일(1.6㎞)의 ‘4분 벽’이다. 영국의 로저 베니스터는 1954년에 결국 그 ‘벽’을 넘었다. 3분 59초 4.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리면 심장이 터질 것”이라던 생리학자들 호언이 무색해졌다. 그런데 이 기록은 불과 46일 만에 깨졌다. 1년 뒤엔 37명, 2년 뒤엔 300명 넘는 선수가 ‘4분 벽’을 넘었다.

다시 피겨로 돌아오자. 한 연구에 따르면, 4회전 점프 때 몸의 회전속도가 평균 340rpm(분당 회전수), 순간 최대 420rpm이다. 5회전 점프는 평균이 400rpm을 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배경이다. 그래도 ‘4분 벽’처럼 ‘5회전 벽’을 넘는 것도 보고 싶다. 차준환이면 좋겠지만, 누군들 어떻겠나.

스케이터야 다시 뛰어라. 돌자. 돌자. 한 번만 더 돌자꾸나. 한 번만 더 돌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