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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 재투표 부결…간호법은 국회의장이 상정 보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법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재표결이 이뤄졌지만 부결됐다. 재석 의원 290인 중 찬성 177인, 반대 112인, 무효 1인이었다. 대통령 거부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무기명으로 진행된 투표에서 국민의힘(115명) 의원 대부분이 반대한 것으로 추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법을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자 “남는 쌀 강제 매수법”으로 규정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법은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증가하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떨어지는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무조건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지난달 23일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이날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로 돌아온 양곡법을 어떻게 할지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재정 부담을 가중하거나 사회적 갈등이 뻔한 법안을 국회법을 악용해 일방 강행하는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윤재옥 원내대표)며 재의결에 반대했다.

의견 차를 줄이지 못해 양곡법은 본회의 의사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양곡법 개정안을 의사 일정에 추가하는 일정 변경 동의안을 본회의에 올려 표결을 시도했다. 국회법에 따라 의원 20명 이상의 요청으로 본회의에서 의사 일정 변경의 건을 의결하면 당일 의사 일정을 바꿀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부결되자 민주당은 “국회입법권을 전면 부정하고 무시한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용산출장소’ 행태에 대해 분명히 경고하고 규탄한다”며 “향후 농민단체와 직접 소통하며 대체입법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뻔히 부결이 예상되는데도 무리하게 의사 일정을 변경해 이 법안을 처리하는 건 대통령과 정부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타격을 가할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건 2007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최고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을 대표발의해 의결됐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예산 부담이 크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국회에서 재의결했지만 3분의 2 찬성을 넘지 못했다.

이날 본회의에선 민주당 ‘2호 직회부’ 법안인 간호법 제정안 상정은 무산됐다. 민주당이 간호법을 의사 일정에 포함시키는 의사 일정 변경 동의안을 기습 제출했지만, 김진표 의장이 “표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 의장은 “정부와 관련 단체 간 협의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여야 간 추가 논의를 거쳐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이날 간호법을 표결에 부치지 않은 건 국회가 ‘거부권 정국’으로 공전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홍근 원내대표는 “의장이 너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면 앞으로 국회가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대치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 개정안도 수정 의결됐다. 의료법 개정안은 민주당 내에서 추가 검토 의견이 나오면서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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