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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면 눈물 왈칵…죽을 때까지 부를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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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배우 김수미는 14년째 뮤지컬 ‘친정엄마’의 무대에 섰다. 그는 “몸이 모든 대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김수미는 14년째 뮤지컬 ‘친정엄마’의 무대에 섰다. 그는 “몸이 모든 대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허벌나게들 먹네. 이거 다 내가 싸온거랑게… 거 미더덕 뜨거워서 조심해야 하는디.”

‘전라도 손맛’으로 사돈의 콧대를 꺾고 노래를 부르는 이는 배우 김수미(74). 사돈 잔칫집에서 몰래 요리 솜씨를 발휘해 딸의 체면을 세워준 후 걸쭉하게 노래를 부른다. 가수 안정애가 부른 ‘대전부르스’를 편곡해 만든 뮤지컬 ‘친정엄마’의 넘버다.

‘친정엄마’는 누적 공연 320회, 관객 수 40만명을 기록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을 중단한 뒤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2009년 초연부터 지금까지 14년간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엄마 역을 맡은 배우 김수미(74)와 작가 고혜정(55)을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김수미는 “3년 동안 ‘친정엄마’ 무대에 못 섰지만, 첫 공연에 들어가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며 “고혜정 작가가 처음부터 나를 모델로 두고 대본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꼭 맞는 편한 구두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에게 ‘친정엄마’가 각별한 작품으로 다가온 이유는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김수미는 “18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70이 넘도록 평생 엄마를 못 불렀다. 극 중에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엄마’ 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다”며 “(이 공연은) 건강만 허락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 김수미는 14년째 뮤지컬 ‘친정엄마’의 무대에 섰다. 그는 “몸이 모든 대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뉴스1]

배우 김수미는 14년째 뮤지컬 ‘친정엄마’의 무대에 섰다. 그는 “몸이 모든 대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뉴스1]

김수미는 ‘김수미의 간장게장’으로 알려진 사업가이기도 하다. 김수미는 요식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엄마 손맛이 그리워서였다”고 했다. “임신으로 입덧할 때 먹는 족족 토해냈는데 그때 돌아가신 친정엄마 겉절이와 풀치(어린 갈치) 조림 한입만 먹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에 통곡했다. 그러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싶은 마음으로 달려들었던 게 지금의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엄마 손맛이 그리워 연예계의 ‘요리 대모’가 됐다는 김수미는 지금도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위해 반찬을 싼다. 고혜정 작가는 “선생님이 연습실에 도시락을 싸 오셔서 ‘한 술씩 먹게’ 하신 게 벌써 14년이 됐다”며 “연습실도 뮤지컬 제목처럼 정말 엄마와 딸 같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고혜정 작가

고혜정 작가

고혜정 작가는 그동안 수도 없이  “김수미를 생각하고 대본을 썼냐”는 질문을 받았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자식 입에 한 숟갈이라도 더 넣으려고 용을 쓰는 친정엄마 역에 전북 군산 출신의 김수미는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라서다. 고 작가는 “선생님은 매 회차 애드립을 보여주시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며 “배우 김수미 이상으로 이 정서를 살릴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TV 코미디 ‘금촌댁네 사람들’, 에세이 『줌데렐라』 『여보, 고마워』 등 줄곧 가족 이야기를 써온  고혜정 작가는 공연장에서 나오는 관객이 “작가가 우리 집에 왔다 갔나 봐”라며 웃는 모습을 봤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의 차기작은 중년 싱글들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다. 고 작가는 “나이 든 사람도 사랑을 하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라고 했다.

오는 6월 4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친정엄마’의 엄마 역에는 김수미와 함께 정경순·김서라가 캐스팅됐다. 딸 미영 역은 김고은(가수 별)·현쥬니·신서옥이 맡았다. 뮤지컬 넘버는 ‘님과 함께’ ‘둥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유명 가요를 편곡해 듣기에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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