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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몸통시신 참극…장대호 뽑은 모텔 사장 책임은 얼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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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근무하던 모텔에 찾아온 손님을 살해한 뒤 손괴·은닉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장대호씨. 사진은 2019년 8월 경찰조사 당시 모습. [뉴스1]

자신이 근무하던 모텔에 찾아온 손님을 살해한 뒤 손괴·은닉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장대호씨. 사진은 2019년 8월 경찰조사 당시 모습. [뉴스1]

 지난 2019년 8월 경기도 고양시 한강 마곡철교 부근에서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시신이 떠올랐다. 서울 구로동의 한 모텔 직원이었던 장대호는 자신의 범행이라며 자수·자백했고 법원은 2020년 7월 그에게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법정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1월 장씨와 모텔 사장 이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하며 서울고법에서 네 번째 판결이 이어지게 됐다. 문제는 이씨와 장씨가 질 책임의 경계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면서다.

직원 근무중 살인, 사장도 손해배상 책임

 서울 구로동의 한 모텔을 운영하던 이씨는 2017년 8월 장씨를 고용했다. 민법은 피용자가 사무집행과 관련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사용자도 배상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살인사건은 근무 장소(모텔 객실 내부)에서 근무 시간(오전 8시경)에 벌어진 일로, 장씨는 손님과 계약 관련(숙박비 4만원) 다툼 후 종업원으로서 가지고 있던 마스터키로 객실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장씨를 고용한 이씨도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 자체는 모든 심급에서 인정됐다. 1심은 “이씨는 모텔 관리업무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마찰 등을 방지하기 위해 피용자인 장씨를 상대로 교육, 감독을 철저히 할 책임이 있고, 장씨의 범행과 이씨의 모텔 운영 사이 사무집행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두 사람이 공동으로 유족들에게 배상하라고 했다(서울남부지법 2021년 6월 선고). 피해자의 아내와 아들, 부모와 누나에게 도합 약 5억500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는데 이를 두 사람이 함께 부담하라는 판단이었다.

장씨는 형사 재판 과정에서 "내가 슬픈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원래 슬픈 감정을 못 느낀다"며 "형이 확정되면 청구된 손해배상 금원에 최선을 다해 배상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은 한강 관련 사진으로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장씨는 형사 재판 과정에서 "내가 슬픈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원래 슬픈 감정을 못 느낀다"며 "형이 확정되면 청구된 손해배상 금원에 최선을 다해 배상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은 한강 관련 사진으로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2심은 “사장으로서 직원이 투숙객을 살해하리란 걸 예견하고 방지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씨의 책임 정도를 70%로 좁혔다(서울고등법원 2022년 3월 선고). 장씨는 벌금형 전과가 있긴 하나 폭력적·충동적 내용은 아니었고 이전에 다른 투숙객이나 직원과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사건 당일 투숙객과 시비가 붙었다고 알린 적도 없는 장씨가 피해자가 투숙한 지 2시간만에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것을 사장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대법 “유족구조금은 범죄행위자 책임에서만 공제”

 대법원도 이씨의 책임은 70%가 맞다고 봤다. 하지만 그 다음 계산이 잘못됐다고 봤다. 유족들이 소송 진행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일단 받은 유족구조금 8830만원(2020년 1월 의정부지검 범죄피해구조심의회 결정)을 누구의 책임에서 공제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서울고법은 그 금액만큼을 이씨의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했지만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유족구조금은 장대호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부분에서 공제돼야 하고 이씨의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며 지난달 9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범죄로 사망한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범죄피해구조금을 주도록 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 돈의 성격을 ‘국가가 대신 해 준 손해배상’으로 보기 때문에 배상청구소송시 이미 받은 구조금 금액은 공제한다. 대법원은 “사용자의 책임 부분에서 공제하면, 그보다 더 많은 채무를 부담하는 범죄자(장씨)가 지불 능력이 없을 때의 위험이 커진다”며 “유족이 국가로부터 소극적 손해배상의 일부에 불과한 구조금을 수령한 것은 다액채무자인 장씨의 단독 부담 부분이 소멸하는 걸 받아들이는 의사였다고 봄이 합리적”이라 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손해배상액에서 구조금 공제를 인정해 이중배상은 방지하되, 범죄피해자 구조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손해배상에 앞서 구조금을 받은 유족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범죄피해자 보호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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