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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심판 vs 거야 심판…집권 2년에 중간평가 총선 [총선 1년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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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69석 거야(巨野)의 입법권력과 윤석열 정부 행정권력간 맞대결에 대한 심판이 1년 뒤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내려진다. 이번 총선은 대통령 집권 2년 차를 앞두고 치러지는 ‘중간평가’이자, 거대 야당과 소수 여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며 상대의 발목을 잡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 민주주의)’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2023.4.4/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2023.4.4/뉴스1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1개월간 정치권은 극한 대립을 반복했다. 입법부를 장악한 야당이 양곡관리법을 강행 처리하자, 대통령은 곧바로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미 민주당이 간호법·의료법·방송법 등을 줄줄이 본회의에 올린 상태여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야당은 ‘친일 프레임’을 앞세운 “정부 심판론”을, 여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를 강조하는 “야당 심판론”을 띄우며 일찌감치 총선 공방전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못난이 경쟁”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희망의 등불로 보고 있고,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에선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의 행태를 희망의 등불로 생각하고 있다”(이상민 민주당 의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도 “총선이 다가올수록 양당 모두 정책으로 중도를 공략하는 대신, 상대 당 득표율 떨어뜨리기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며 “가장 극심한 네거티브 총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칠게 충돌하는 양당과 달리, 유권자 표심은 여전히 한발 물러서 있다. 지난 4~6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32%)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33%) 지지율과 접전을 펼쳤다. 아무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도 28%로 양당 지지율과 엇비슷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내년 총선 성격을 묻는 문항엔 ‘정부견제론’(50%·야당 승리 선호)이 50%로 ‘정부지원론’(36%·여당 승리 선호)보다 14%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층에선 정부견제론(57%)과 정부지원론(31%)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민주당 입장에서 고무적인 부분이다. 21대 총선 1년 전 같은 조사(2019년 4월 9~11일)에서 ‘정부지원론’(47%)이 ‘정부견제론’(37%)보다 우세했던 게 결국 180석 압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1년 전 여론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대 총선을 1년 앞둔 한국갤럽 여론조사(2015년 4월 7~9일)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38%)이 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25%)을 크게 앞섰으나, 정작 2016년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패했기 때문이다. 장훈(정치학) 중앙대 교수는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같은 경제지표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정부 경제 정책이 호소력을 가졌는지, 또 윤석열 정부 임기 중반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의장석.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서류뭉치 등을 집어던지자 국회 경위들이 의장을 둘러싸고 있다.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의장석.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서류뭉치 등을 집어던지자 국회 경위들이 의장을 둘러싸고 있다.

4·10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중·후반기 3년여의 국정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00년대 이후 대통령 집권 초반기 총선에선 모두 여당이 승리하며 탄탄한 국정 동력을 확보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열렸던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153석)을 차지했고, 무소속과 친박연대·자유선진당 등 범보수진영이 200석을 넘기며 보수 우위체제를 구축했다. 노무현 정부 1년 2개월 차에 열린 17대 총선 역시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신생 여당 열린우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확보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 11개월 만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과 시기적으로 가장 근접했던 2000년 총선에선 여당이 패했다. 새천년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2년 2개월 차에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수도권 압승을 바탕으로 의석수를 115석으로 늘렸지만, 한나라당 의석수(133석)엔 미치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은 자유민주연합에 의원들을 꿔주고 제3의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극약처방까지 썼지만, 이듬해 9월 자민련이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가담하면서 여소야대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내년 총선 결과는 2026년 지방선거나 2027년 대선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3년 2개월 차에 열린 20대 총선(2016년 4월)에서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원내 1당 지위를 상실했고, 이는 같은 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 반면 이명박 정부 말기 19대 총선(2012년 4월)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이끌었고, 결국 8개월 뒤 정권 재창출로 이어졌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웃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웃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정치권에선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경우 ‘윤석열표’ 정책 드라이브가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조직법 처리를 통해 여가부 폐지 등 막혀있던 핵심공약을 추진할 수 있고, 그간 시도하지 못했던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이 승리할 경우 윤석열 정부는 ‘조기 레임덕’에 빠질 위험이 생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임기 중반까지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야권의 국정운영 제동 강도가 임기 초반보다 훨씬 세지고 레임덕의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다만 정부·여당이 가진 수단이 많은 만큼, 총선 승리 시엔 국정 운영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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