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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침공에 외고도 무너졌다…'특목고' 포기한 강원외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의 외고 폐지 정책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의 외고 폐지 정책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던 강원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 지난 5일 교육부가 강원도교육청과 학교의 특수목적고 지정 취소 신청에 동의하며 2024학년도 입시부터는 일반고 자격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됐다. 교육계에서는 이공계열 선호 현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과반이 없는 외고는 상대적으로 찾는 학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외고 3곳 중 1곳은 미달…“이공계 바람 거셌다”

2010년 개교 당시 첫 신입생 모집에서 2.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강원외고는 문재인 정부의 외고 폐지, 수시 확대 정책과 맞물려 경쟁률이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9년 1.59대1, 2020년 1.22대1, 2021년 1.08대1로 매년 줄더니 지난해는 125명 모집정원에 107명이 지원해 0.8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외고 존치 방침이 나온 2023학년도 입시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집정원 125명에 128명이 지원해 겨우 1대1을 넘겼다.

이 같은 미달 사태는 강원외고만의 일이 아니다. 2023학년도 외고 신입생 모집 경쟁률은 평균 1.13대1을 기록했다. 30곳 중 10곳에서 1대1 미만의 경쟁률을 나타낸 결과다. 한때 명문대 보증수표였던 외고가, 원서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된 것이다.

강원외고 홈페이지. 일반고 전환을 알리는 공지문이 팝업창으로 띄워져있다.

강원외고 홈페이지. 일반고 전환을 알리는 공지문이 팝업창으로 띄워져있다.

교육 당국과 학교 관계자들은 이 같은 추세에 이공계 선호 현상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문과생들이 진학하는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의 취업난이 꾸준히 이어진 데다, 최근엔 통합형 수능으로 이과 학생들이 대학 가기 쉬운 구조가 되며 외고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외고 재학생은 대부분 문과생이다. 수업 중 일정 비율 이상(180단위 중 72단위)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 전공 수업으로 편성해야 하다 보니 이과생은 들어와도 대입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구조다. 과거 일부 외고가 편법으로 이과반을 운영하자 교육부가 “설립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기관경고,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외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질 동안 대학은 이과생에게 문호를 넓혔다. 이공계열 학과, 정원을 늘린 데 이어 통합형 수능이 도입된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과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수학(미적분 기하), 과학 과목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과생들이 입학하는 인문·사회 계열에 이과생들이 대거 입학하는 ‘문과침공’ 현상까지 나타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정부가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거나 의사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 입시엔 외고 체제가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원섭 강원외고 교장은 “자연계를 받을 수 없다 보니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최근 들어 강원도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강원과학고에서 떨어지면 타 시도의 자율형사립고로 빠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문과만 받는 반쪽짜리 외고는 점점 인기가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외고 나와 의대 갈 수 있으면 반등 가능성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다만 이 같은 외고 경쟁률이 반등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지금은 고교 내신에 상대평가제가 적용되고 있어 상위권 학생들이 몰린 외고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외고 인기가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21년에 고교학점제 도입을 발표하며 선택과목에만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고1 때 주로 듣는 공통과목은 상대평가인 9등급제를 절대평가와 병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주호 부총리 겸 사회부총리가 취임한 올해에는 공통과목까지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내년 2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임성호 대표는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 수능 체제에 맞춰 문과생들도 이공계, 의약학 계열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학들의 선택과목 지정을 푸는 방안을 유도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에 맞춰 외고생도 의대 갈 수 있는 체제가 되면 다시 경쟁률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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