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숲 위에 아스팔트, 비석도 세웠다…자연 해치는 수목장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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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9월 경북 경주 하늘수목장림 내 추모목 주변이 마치 민둥산 같다. 추모목 아래에 잔디를 심어 작은 묘지처럼 꾸민 곳도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지난해 9월 경북 경주 하늘수목장림 내 추모목 주변이 마치 민둥산 같다. 추모목 아래에 잔디를 심어 작은 묘지처럼 꾸민 곳도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지난달 27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하늘숲추모원. 이곳은 2009년 문을 연 국내 1호 국립 수목장림(樹木葬林)이다. 수목장은 화장한 골분(骨粉)을 나무 밑이나 주변에 묻는 것을 말한다. 하늘숲추모원은 축구장 67개 넓이인 48ha에 추모목 6315그루가 있다. 추모목은 주로 소나무다.

유골 안치된 곳 묘지처럼 꾸며

겉으로 볼 땐 여느 숲과 같다. 하지만 산에 오르면 듬성듬성 자라는 추모목만 보인다. 다른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추모목 곳곳에 작은 봉분(封墳)이 눈에 띄었다. 수목장림을 ‘묘지’처럼 쓰고 있어서다. 추모목엔 고인 이름과 출생·사망일 등 정보가 담긴 목재 표찰 정도만 걸어야 한다. 또 추모원 중심부는 아스팔트 포장을 하는 바람에 숲이 끊겼다.

자연 친화적인 장사시설인 수목장림이 오히려 숲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양평 국립하늘숲추모원 내 한 추모목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잎이 말랐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양평 국립하늘숲추모원 내 한 추모목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잎이 말랐다. 김민욱 기자

매년 여의도 면적 사라지자 수목장림 떠 

을지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내놓은 ‘국유 수목장림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 등에 따르면 국내 수목장림 도입 논의는 2005년 전국 화장률이 50%를 넘으면서 활발해졌다. 매장 대신 다양한 장사 시설이 생기면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자연장지 필요성이 커졌다. 화장률이 낮은 90년대엔 매년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9㎢) 만큼 묘지가 들어섰다.

이후 자연장 도입을 골자로 한 장사법이 개정됐고, 양평 하늘숲추모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주요 공공 수목장림은 하늘숲추모원 외에 국립기억의숲(충남 보령)·하늘수목장림(경북 경주)·보배숲추모공원(전남 진도)·자연숲추모공원(전남 장성) 등 5곳이 있다. 민간 수목장림도 여러 개 있다. 경주·진도·장성 수목장림은 산림조합이 운영한다.

수목장림 내 추모목 아래에 작은 봉분이 만들어져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수목장림 내 추모목 아래에 작은 봉분이 만들어져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을지대 산학협력단 보고서 등에 따르면 현재 수목장림은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년 전 개장한 경주 하늘수목장림(면적 7.1ha·추모목 2991그루)이 대표적이다. 무리한 간벌·정비로 숲이 제모습을 잃었다고 한다. 일부 구역은 민둥산처럼 보인다. 또 유골을 안치한 곳에 아예 잔디를 입히거나 작고 네모난 비석을 놓기도 했다.

반면 자연장지 특성을 살린 곳도 있다. 2012년 문을 연 진도 보배숲추모공원은 인공적인 도로포장 등을 최소화했다. 이런 사례는 해외에도 있다. 네덜란드 베르허보스 자연장지 역시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다. 도로를 포장하지 않아 운구에 수레를 이용한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공동대표는 “수목장림이 점차 묘지화되면서 오히려 숲 건강성을 해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목림장 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산림이 분절돼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수목림장 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산림이 분절돼 있다. 사진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숲에 휴식 줘야...장기적으론 산림장" 

전문가들은 수목장림에 안식년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공동대표는 “숲과 같은 자연의 복원에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은 휴식을 주는 것”이라며 “과거 서울 남산 숲이 황폐해졌을 때도 출입을 통제해 살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려면 유족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 사람은 추석과 설 명절 등 1년에 두 차례 묘지를 찾는다. 이때 추모목까지 가지 말고 입구에 공동 제례단 등을 만들어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추모목이란 공간에만 한정해 꼭 그 앞에서만 절하고 술을 올리지 말고 숲 자체에 영면해 계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수목장림에서 ‘산림장’으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웨덴 추모의 숲 민네스룬드가 모델이다. 이곳은 골분을 묻거나 뿌린 장소는 관리자 말고는 출입이 어렵다. 추모 길과 공용 추모공간에서만 헌화 등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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