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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미스터 사카모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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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 특파원

이영희 도쿄 특파원

일본의 이번 주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추모 주간이다. 특파원으로 도쿄에 있는 동안 여러 유명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일주일 내내 신문과 방송에 추모 열기가 이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지난 4일 밤엔 NHK가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지난 1월 방송했던 마지막 콘서트 ‘사카모토 류이치(Playing the Piano in NHK)’를 방영했고, 마이니치신문은 추모 사설을 썼다. 도쿄신문은 10년 전 원전 반대 운동에 열심이던 그가 도쿄신문 기자 100명과 만나 대담했던 기사를 다시 요약해 실었다.

그만큼 크고 깊었던 삶이었다. 젊은 시절에 실험적인 전자음악으로 세상을 흔든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었고,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 등으로 세계 영화상을 휩쓴 영화음악가이자 배우였다.

지난 2009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로마의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 [AP=연합뉴스]

지난 2009년 10월 28일 이탈리아 로마의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 [AP=연합뉴스]

사카모토는 일본에서는 드물게 사회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낸 예술가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 반핵 운동의 중심에 섰고, 2015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정권의 안보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 3월에는 메이지진구(明治神宮) 야구장 재개발을 중단해달라는 편지를 도쿄도지사에게 보냈다.

왜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하니까.”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수많은 팬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지인들이 쓴 아름다운 추모의 글을 읽고 또 읽게 된다. 비평가인 아사다 아키라(浅田彰)는 아사히신문에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결시키는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평가는 이것이었다. 저술가이자 프로듀서인 유야마 레이코(湯山玲子)의 말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놀라울 정도로 동등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공평하게 대했던 진짜 리버럴리스트였다.”

그는 타계 직전까지 음악을 붙들고 있었다. 오는 6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괴물’의 음악을 유작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의 진짜 마지막 곡은 이번 달 개교한 도쿠시마(徳島)현 가미야마마루고토(神山まるごと) 고등전문학교(고등학교+전문대학)의 교가였다.

이 학교는 테크놀로지 기업가 육성을 목표로 만들어졌고, 평생을 테크놀로지의 첨단에 섰던 사카모토에게 교가를 만들어 달라 요청했다. 병세가 깊어진 그가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교가는 앞으로 음악가와 학생들이 함께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정한 리버럴리스트’다운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