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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음료, 퀵으로 받았다”…마약조직이 쓰는 ‘던지기’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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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대치동에서 발생한 ‘마약 음료수’ 사건에 강남 학원가가 발칵 뒤집혔다.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을 겨냥한 사건인 만큼, 학원과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도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6일 오후 하원하는 자녀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불안이 감돌았다. 대치동 한 학원 앞에서 만난 윤모(47)씨는 “엄마들끼리도 난리다. 중·고등학생들을 맨날 데리고 가고 오고 할 수도 없고 어떡하나”라며 불안해했다. 중학생 학부모 유모(45)씨는 “여기 대치동 아이들 공부 시키는 곳에서 집중력 이야기를 하면서 마약을 나눠줬다는 게 너무 악의적”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마약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든 충격적인 일”이라며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 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용의자 4명 중 20대 여성 1명이 추가로 자수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CCTV 영상 등을 통해 확인된 용의자 4명 중 1명인 40대 여성은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검거됐고, 20대 남성 한 명은 언론 보도 등을 보고 같은 날 자수했다. 경찰은 용의자 중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1명의 신원을 특정하고 추적 중이다.

이들은 지난 2~3일 대치동 일대 학원가에서 시음 행사를 하고 있다며 학생들을 상대로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음료수를 받아 간 학생들에겐 부모 연락처를 달라고 한 뒤 협박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지하철역 물품보관함과 퀵서비스 등을 통해 마약 음료를 전달 받았다”고 진술했다. 전형적인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 음료를 전달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경찰은 기존 마약 유통 조직 등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 검거된 피의자 중 1명이 간호사 출신인 점을 확인하고, 마약 음료 제조 과정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도 추궁 중이다. 해당 사건은 이날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로 이관됐다.

경찰청은 유사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한 단속과 선제적 예방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은 6일부터 하교 후 학원 이용 시간대에 기동대를 투입해 대치동·목동·중계동·창동 등 학원 밀집 지역에 대한 예방 순찰을 실시했다. 검찰 역시 전국 검찰청에 마약범죄 엄정 대응과 유관기관 협업 강화를 긴급 지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강력한 단속을 검·경에 동시에 주문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합동수사단을 꾸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이 범행 장소로 강남 학원가를 점찍은 데는 10여 년 전부터 학부모·수험생들 사이에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유행했던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피의자들이 음료에 붙여둔 상표도 ‘메가 ADHD’로, 학원가에서 ADHD 치료제가 자주 쓰이는 분위기를 범죄에 악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약 수사 경력 20년 이상의 한 경찰관은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은 봤어도 이런 ‘묻지마 마약’은 처음”이라며 “마약이 흔해진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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