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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콩 농사, 돈 더 주면 된다"…文 때 폐기된 정책으로 與 맞불

중앙일보

입력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양곡관리법의 기본 취지는 사전에 쌀 생산량을 조정하자는 것이고,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시장 격리’는 사후적으로 초과 생산량이 발생하는 상황에 한해 비상조치로 예비해놓은 것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니다. 쌀 생산량에 대한 선제 조정은 강제 매입 제도가 없을 때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한덕수 국무총리)

지난 4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의 한 장면이다. 두 사람의 논박에는 양곡관리법 관련 핵심 이슈가 축약돼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곡관리법 관련해 설정을 벌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곡관리법 관련해 설정을 벌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신 의원 주장대로 두 가지 축(생산조정제·의무매입제)이 핵심이다.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해 쌀 공급량을 줄여나가는 ‘생산조정’ 조항이 한 축이고, 그럼에도 초과 생산된 쌀은 정부가 사들이는 ‘의무매입’ 조항이 다른 한 축이다.

여기서 한 총리가 지적한 양곡관리법의 문제는 “벼농사를 계속 지어도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턱턱 사주는데, 뭣 하려 애써 다른 작물로 품종을 바꾸겠느냐”는 것이다. 즉 의무매입 조항이 존재하는 한, 쌀 재배 유인이 증가해 공급 과잉 해소가 난망하고 생산조정제가 작동할 여지도 확 줄어진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드는데 이렇게 무턱대고 생산 유인을 늘려서 어쩌자는 거냐”며 “작물 전환을 유도해 쌀 생산량을 줄여나가는 게 최우선 정책 방향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뉴스1

당정은 생산조정제의 일환인 ‘전략작물 직불제’ 확대 개편을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추진키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에 대한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뒤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6일 ‘쌀값 안정화’ 당정 협의에서 이런 방침이 발표된다.

전략작물 직불제는 논에 콩·가루 쌀·조(粟)사료 등을 재배할 경우 헥타르(ha)당 50만~48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밀·콩과 같이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의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구조적 과잉인 벼 재배를 줄여 만성적인 쌀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책 성공의 관건은 재배 품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는 평가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양수 의원은 통화에서 “농업인들이 밀가루 대용품인 가루 쌀로 품종을 전환할 경우, 이렇게 생산된 가루 쌀을 우리나라 제빵업계가 거의 전량을 매수해 활용할 수 있도록 민정 협의도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당시 15살의 중학생 농부였던 한태웅씨가 '밥상이 힘이다'라는 주제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직접 수확한 쌀 5kg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할아버지를 도와 직접 농사에 참여해 이 쌀을 수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2월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당시 15살의 중학생 농부였던 한태웅씨가 '밥상이 힘이다'라는 주제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직접 수확한 쌀 5kg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할아버지를 도와 직접 농사에 참여해 이 쌀을 수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앞서 2018~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와 유사한 정책인 ‘논 타 작물 재배지원사업’이 시행됐다. 그러나 인센티브 부족 등의 이유로 농업인들의 참여가 저조했고, 해당 사업은 기획재정부로부터 2021년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채 폐기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직불금 인상 등 인센티브를 더욱 확대하는 식으로 사업을 개편했다면 존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나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대안 마련 논의를 전혀 진행하지 않아 그대로 폐기됐다”며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하는 것은 시장 원리의 파괴인 만큼, 쌀 생산량 자체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도록 보조금을 지급해 유도하는 방식이 맞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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