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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사고뭉치 최고위원, 통제 못하는 대표…불안한 김기현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5일 오전 국회 본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영국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지만 취재진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조수진 최고위원이 오전에 라디오에서 발언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조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과 관련해 ‘공기밥 다 비우기’라는 아이디어를 언급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그게 무슨 대책이 될 수 있겠느냐”고 선을 그으면서도 조 최고위원이 이끄는 당 민생특위(일명 ‘민생119’)가 희화화되고 있다는 지적엔 “지금 활동을 시작했는데 희화화될 것이 뭐가 있겠냐”고 옹호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김재원·조수진 최고위원의 (문제 발언이) 연달아 나오는데 한 말씀 해 달라”고 하자 김 대표는 허탈하게 웃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조 최고위원은 ‘공기밥 비우기’에 대해 “몇몇 아이디어를 소개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집권여당 지도부이자 민생특위 위원장이 갖는 무게감은 적지 않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조 최고위원이 대안을 묻는 질문에 “여성들이 다이어트하느라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이 칼로리가 낮다”는 말을 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걸 갖고 대안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 갈수록 태산”이라고 비꼬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풍경은 요즘 국민의힘의 일상이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말로 논란을 일으키면 기자들이 김 대표에게 입장을 묻고, 김 대표는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뜨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고위원 최다득표자인 김재원 최고위원은 당선 한 달도 안 돼 세 번의 설화(舌禍)에 휩싸였다. 그는 지난달 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5·18 정신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고 했고, 같은 달 25일엔 미국에서 “전광훈이 우파를 통일했다”고 했다. 지난 4일엔 제주 4·3 추념식을 “국경일보다 격이 낮은 추모일”이라고 했다. 이미 3·8 전당대회 과정에서 북한 출신 태영호 최고위원이 “4·3은 김일성 지시”라고 발언해 비판 여론에 불을 지핀 상황에서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결국 지도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김 대표의 리더십 부재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도부 주변도 논란이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가 “윤석열 정부는 지금 과도하게 지지층을 향한 구애에 치중한다”고 지적하자, ‘친윤’ 이용 의원은 “‘멘토’ 호칭을 앞세워 사견을 훈계하듯 발설한다”고 쏘아붙였다. 당내에서 “완장질이 심하다”란 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각종 비리 혐의에 연루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이 대표도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밥 한 공기 다 먹기 운동’을 듣고는 “신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 경박스럽다. 여당 지도부는 신중하고 진지해져라”고 했다. ‘이재명 규탄’ 빼고는 별다른 콘텐트가 없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얼굴이 화끈거리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출범 한 달이 채 안 된 김기현호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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