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VB 파산 후폭풍에…은행 ‘과점체제’ 허물기 주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은행 과점 체제 해소 논의가 주춤거리고 있다.

경쟁 촉진을 위해 검토 중인 주요 방안에 대해 ‘메기 효과’ 는 미미하고, 자칫 금융 시장의 안정성만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특히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 은행의 연쇄 위기가 이어지며, 규제 개혁보다 금융 안정을 고려한 신중론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2일 ‘경쟁 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위한 제언’ 보고서에서 “경쟁 제한적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면 안정성이나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지난 2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은행 과점 체재에 대한 해소 방안을 찾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과 통신 분야에 대해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 데 따른 것이다. TF는 업무 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설립 및 핀테크 관련 규제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대형 시중은행이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는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를 진입시켜 경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은 “시장 지배력이 있는 대형 금융회사가 낮은 대출 금리를 책정할 경우 소형 금융회사는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낮은 대출금리로 이익을 낼 수 없는 소형 금융회사는 자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에 소규모 특화은행이 들어서도 시장을 뒤흔들기는커녕 살아남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를 완화해 핀테크의 은행업 진입 문턱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도 금융연구원은 “금융감독이 느슨한 비금융회사에 은행 업무를 허용해 주면 금융시장의 안정성·공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시 TF에서 거론되는 비은행권의 결제 시스템 참여에 대해선 한국은행이 반대하고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결제 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SVB 사태,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과 관련해 결제 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비은행권의 결제시스템 참여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과점 체제 해소를 위한 대안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며 이번 TF가 2008년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금융당국은 메가뱅크 설립 등을 추진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계획을 멈췄다. 금융당국은 오는 6월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