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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타면 큰일" 발 동동…시뻘건 불기둥 학교 담벼락 덮쳤다 [홍성 산불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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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마을 전체가 다 타겠어요. (서부) 중학교는 가까스로 불길이 피해갔는데 바람이 더 강해지기라도 하면 불길이 마을로 넘어오는 건 시간문제인데...”

3일 오후 3시30분 충남 홍성군 서부초등학교 앞 도로. 마을 주민 50여 명이 나와 건너편에서 확산하는 불길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3일 오후 충남 홍성군 서부면 RPC 공장 앞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소방 당국이 급하게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신진호 기자

3일 오후 충남 홍성군 서부면 RPC 공장 앞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소방 당국이 급하게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시뻘건 불기둥이 RPC공장(미곡처리장) 뒤편까지 근접하자 주민들은 “저기가 타면 큰일 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긴급하게 출동한 대형 소방차 2대가 연신 물을 뿜어대며 저지선을 만들었지만, 불길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불길이 산림을 삼키면서 내는 ‘타다닥~’ 소리는 200~3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로 강했다.

중학교 가까스로 불길 피해…교직원들 대피

앞서 오후 2시30분쯤 능선을 타고 넘어온 산불이 서부중학교 담벼락까지 닿자 교직원들은 급하게 서류 등을 챙겨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3일은 임시 휴교라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은 탓에 큰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다. 산불 피해 주민 임시 거처였던 서부초등학교도 코앞까지 불길이 다가오면서 홍성군은 인근 갈산중·고등학교로 주민들은 대피했다.

2일 발생한 홍성 산불이 3일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낮 12시쯤 불길이 강풍이 불며 순식간에 다시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언합뉴스

2일 발생한 홍성 산불이 3일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낮 12시쯤 불길이 강풍이 불며 순식간에 다시 민가까지 확산하고 있다. 언합뉴스

대피소에서 만난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함수일(69) 씨는 "이번 산불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돼지 860마리를 잃었다"고 했다. 이날 찾아간 그의 축사는 까맣게 타 뼈대만 남았고, 농장 바닥엔 돼지 사체가 곳곳에 있었다. 양곡리 주민 김정자(86) 씨는 "비료도 타고 비닐하우스도 타고 마당도 다 탔는데, 집까지 불이 번지려는 걸 아들래미 친구가 와서 불을 꺼서 막아줬다"면서 "혈압약을 집에서 못 가져와서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안 좋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불 현장을 찾은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홍성을 비롯한) 도내 산불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피해 가정이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달라”며 “피해를 본 학생은 주거 안정과 학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 방안을 꼼꼼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들어 서부면 일대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불길이 사방으로 번졌다. 산림청이 오전보다 4대가 늘어난 헬기 22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지만 건조한 날씨로 마른 산림이 급속하게 타면서 속수무책이었다. 오전 11시 73%였던 진화율이 오후 2시 66%로 곤두박질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민들 "밤사이 마을까지 불길 번질까 우려" 

마을 주민은 일몰 때까지 주불을 진화하지 못하면 산림은 물론 평지에 있는 주택가 상가·학교가 화마 중심으로 들어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불 첫날인 2일 밤에도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서부면 중리에서 불길이 곳곳으로 번져 피해 면적이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부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 중턱에 사는 주민들은 급하게 가재도구를 챙겨 산 아래로 내려왔다. 한 주민은 “지금이야 불이 어디로 번지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밤에는 쉽지 않아 우선 아랫마을로 몸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오후 충남 홍성군 서부면 야산에서 불길이 강풍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신진호 기자

3일 오후 충남 홍성군 서부면 야산에서 불길이 강풍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신진호 기자

주민들이 대피하고 나서 불과 30분이 지나지 않은 오후 4시쯤 민가 주변까지 불길이 확산했다. 자칫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나빠지자 김태흠 충남지사는 민가 피해 예방에 총력을 다할 것을 관계 당국과 공무원에게 지시했다.

김태흠 지사 "민가 피해 예방에 최선 다해달라" 

김태흠 충남지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바람이 강해져 진화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며 “주불은 헬기가 잡고, 소방대를 민가에 배치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한편 홍성 산불로 군(郡) 지정문화재인 양곡사와 내부에 있던 조선 후기 유학자 남당 한원진 선생 사당이 모두 불에 탔다. 한원진 선생 집안 며느리인 조순근(78) 씨도 겨우 몸만 피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하루아침에 조상의 사당이 불에 타버려서 허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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