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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키울 판에 인재 전쟁…바이오·배터리·조선 향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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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롯데바이오로직스 시러큐스 공장 전경. 인천지검은 지난달 23일 롯데바이오로직스 직원 A 씨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롯데바이오로직스 시러큐스 공장 전경. 인천지검은 지난달 23일 롯데바이오로직스 직원 A 씨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 롯데바이오로직스

#1. 인천지검은 지난달 23일 롯데바이오로직스 직원 A씨를 회사 기밀을 밀반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이직하면서 품질보증 작업 표준서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2. SK온 전·현직 임직원 30여 명은 3년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에서 SK로 이직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영업 기밀 일부를 빼낸 혐의다. 경찰은 4차례 압수 수색을 거쳐 지난해 4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조만간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3일 관련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배터리·바이오·조선 산업 등에서 인력 유출 이슈가 확산하고 있다. 대개는 신성장 분야나 경기가 회복하는 업종인데 ‘인력 빼가기’ 때문에 본연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연도별 산업기술유출사범 검거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도별 산업기술유출사범 검거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삼성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롯데바이오에 “삼성바이오 임직원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인력 유인 활동을 즉각 중단해 달라”며 세 번째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롯데바이오는 의약품 위탁생산 및 개발(CDMO) 사업 분야에서 삼성바이오와 경쟁한다. 롯데바이오는 “원칙대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으며 고의적인 인력 빼가기나 기밀 유출은 아니다”고 대응하고 있다.

검찰이 A씨를 기소하면서 영업비밀 유출은 법원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는 이번 사안을 무겁게 보고 있다. 존 림 삼성바이오 대표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기업 간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력 빼가기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지식재산권 보호와 처벌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주장했다.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 위치한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온 전·현직 임직원 30여명은 기술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SK온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 위치한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온 전·현직 임직원 30여명은 기술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 SK온

이처럼 인력 유출에 대응하는 방식도 기존 ‘숨기기’에서 ‘드러내기’로 바뀌고 있다. 여기엔 ‘밀리면 죽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신기술 경쟁, 나아가 핵심 인력 확보 경쟁에서 밀리면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LG와 SK 간 배터리 소송전이 대표적이다. 김성경 변호사는 “인력 및 기술 유출 문제로 국내 기업 간 분쟁이 불거진 건 그동안 낯선 장면이었다”며 “국내 법원이 아닌 미국 공공기관(국제무역위원회·ITC)에 분쟁을 제기한 것도 이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인력 유출 분쟁이 ‘피할 수 없는 미래’란 시각도 있다. 조선사 간 인력 빼가기 분쟁이 이를 보여준다. 앞서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한조선·케이조선 등 4개 조선사는 지난해 8월 한국조선해양(HD현대)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우리 인력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한국조선해양 측은 “경력직 채용은 통상적인 공채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사실 조선소 인력 부족은 예견된 것이었다. 불황 끝에 수주가 몰리면서 현장 인재가 특히 부족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호황기에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불황기에 대규모로 해고하는 천수답 방식으론 조선업의 미래를 보장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한조선·케이조선 등 4개 조선사는 지난해 8월 한국조선해양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한조선·케이조선 등 4개 조선사는 지난해 8월 한국조선해양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연합뉴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경제활동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제조업의 경우 경쟁국보다 훨씬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근로자 평균 연령은 2011년 39.2세에서 2020년 42.5세로 3.3세가 올랐다. 같은 기간 일본은 1.2세(41.6→42.8세), 미국은 0.3세(44.1→44.4세) 높아진 데 그쳤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신산업 육성정책이 중요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현장 실무인력 부족 문제”라며 “석·박사급 인재 양성에만 집중하지 말고 균형적인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지방대학 등과 연계해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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