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병 조직 신설? '국가 경호대' 밀어붙이는 이스라엘 극우장관

중앙일보

입력

이스라엘 각료회의가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성향 정치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요구한 '국가 경호대(national guard)' 설립안을 승인했다.  

국가안보장관은 이미 경찰과 국경 경찰을 관할하고 있는데, 기존 조직과 기능이 상당 부분 겹치는 별도의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사실상 장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사병 조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도 "2개의 경찰 조직이 존재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타마르 벤 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2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타마르 벤 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2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재로 열린 각료회의에선 격론 끝에 투표를 통해 국가 경호대 설립 승인 결정이 났다. 

앞서 벤 그비르 장관이 공개한 국가 경호대 설립에 관한 내각 결의안 초안에는 경호대가 '민족주의자 범죄와 테러 대응, 필요한 지역에서의 통치권 강화에 동원될 예정'이라고 명시돼 있다. 2000명가량의 군 복무 대상자로 구성하고, 경호대 지휘권은 국가안보장관이 행사한다고 했다.  

벤 그비르 장관은 "국가 경호대의 활동은 빈발하는 비상 상황 때문에 전통적이고 핵심적인 임무를 소홀히 했던 경찰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입장이다.  

"아랍계 탄압 용도 동원 우려"  

그러나 이스라엘 내에선 경호대가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탄압하는 용도나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정착촌 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벤 그비르 장관은 정계 입문 이전 초극우파 활동가였으며 반아랍 인종 혐오를 선동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또 이같은 별도 경호대 설립이 최근 이스라엘 정국을 혼돈에 빠트린 사법 정비 입법과 관련이 있단 지적도 나온다. 사법 정비 입법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벤 그비르 장관은 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경찰에 주문했으나 일부 간부들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이에 벤 그비르 장관이 경호대를 반정부 시위 진압에 동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각료회의가 경호대 설립안을 채택함에 따라 설립 위원회가 꾸려지고, 이 위원회가 90일 이내에 경호대의 활동 범위와 지휘 체계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이 결정 사항을 토대로 관련 입법 절차가 진행된다. 이스라엘 내각은 성명을 통해 "국가 경호대 지휘권이 누구에게 종속될 것인지 대해선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경호대의 민병대화'에 대한 우려로 직접 지휘권을 벤 그비르 장관에게 부여하는 것은 일단 보류된 셈"이라고 전했다.  

2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EPA=연합뉴스

2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EPA=연합뉴스

반발에도 "벤 그비르의 정치적 승리" 

경호대 설립과 관련 이스라엘 야당은 물론 내각과 경찰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각료회의에서 길라 가밀리엘 정보부 장관은 "벤 그비르 장관이 다른 부처의 예산상 희생을 유발하면서까지 경호대 설립을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코비 샤브타이 이스라엘 경찰청장은 경호대 설립과 관련 "자원 낭비이며 법 집행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의견을 피력했다. 앞서 갈리 바하라브 미아라 검찰총장도 경호대 설립에 심대한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는 "벤 그비르의 사조직 깡패 군단에 (정부의) 자금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호대 설립 승인은 "벤 그비르의 정치적 승리"란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국가 경호대가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되든 내각의 이번 승인 결정은 한때 변방의 운동가였던 벤 그비르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정부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했다. 또 "네타냐후 총리의 정부 통제력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번 내각의 경호대 설립 승인은 벤 그비르 장관이 사법 정비 입법을 연기하는 데 동의한 대가라고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사법 정비 입법 절차를 연기하기로 하자 벤 그비르 장관은 연정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가 경호대 승인을 약속해 벤 그비르 장관이 마음을 돌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