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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스마트팜의 광원은 왜 보라색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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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언젠가 국립과천과학관에 들렀다가 ‘식물공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미래형 농장을 보았다. 보라색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켜진 투명한 박스 안에서 층층이 쌓여 자라는 잎채소류들이 신기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 내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몇몇 지하철 역사 내에 ‘메트로팜’이라고 이름 붙인 실내 식물농장을 운영 중이다. 지하철은 빠른 이동을 위해 지하 깊은 터널에 선로를 놓아 만든 가장 인공적인 공간이다. 이 지하철을 위한 역사(驛舍)에서 이름부터 자연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보라색 불빛만큼 새삼스럽다.

LED로 농사짓는 식물 공장
빨강·파랑색 빛 광합성에 이용
두 색깔 섞여 보라색으로 보여
최고의 효율 위한 통제의 결과

농업은 자연에 대한 인위적 통제

영국 스코틀랜드 던디 인근의 영농기업 인텔리전트 그로스 솔루션의 식물공장 내부. 보라빛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아래서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AFP=연합]

영국 스코틀랜드 던디 인근의 영농기업 인텔리전트 그로스 솔루션의 식물공장 내부. 보라빛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아래서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AFP=연합]

사실 농업이라는 활동은 그 자체로 자연에 대한 인위적 통제의 산물이다. 식물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에너지 저장원인 포도당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다. 식물은 엽록소에서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포도당의 화학식이다. 포도당의 화학식은 C6H12O6로, 이는 탄소 6개, 수소 12개, 산소 6개로 구성된 분자라는 의미다.

식물의 엽록소는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H₂O) 분자 6개와 대기 중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CO2) 6개를 원료로, 햇빛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들어낸다. 그러고 남은 산소 분자(O2)는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은 식물이 만든 포도당을 먹고 역시 그들이 만들어낸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고 남은 것은 물과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되돌려 소변과 날숨의 형태로 내놓는다. 식물은 다시 이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그렇게 동물은 식물을 먹고, 식물은 동물이 분해한 것들을 재조립하면서 생태계는 물질과 에너지가 순환되며 균형을 이룬다.

사람은 잡식동물이기에 식물뿐 아니라 다른 동물도 먹지만, 가장 큰 에너지원은 역시 식물성 식품이다. 쌀·밀·옥수수와 감자는 세계 4대 식량 작물이며,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곡식과 채소와 열매는 인간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다. 동물인 인간은 외부로부터 에너지원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 수 없기에, 먹는다는 건 가장 중요한 행위다. 이 때문에 인류는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농경은 그 노력의 결과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농경이 수많은 불확실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농경 불확실성 줄이려 했던 인류

물론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었다. 토질과 물·일조량·기온·바람 등의 요소를 모두 통제하기는 어려웠다. 물과 대기가 좋고 땅이 비옥한 곳에서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었지만,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는 소출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기껏 옥토를 찾아 심고 정성껏 돌본 작물이 한순간의 태풍이나 홍수, 돌연히 찾아온 가뭄이나 한파에 한순간에 허무하게 스러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확실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위적 통제가 필요했다. 계절을 보고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거름과 물을 주고, 때맞춰 김매기를 하는 등 인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농경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요소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면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한시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메트로팜’은 스마트팜의 일종이다. 스마트팜은 식물 성장에 있어서 요구되는 모든 요소를 철저히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공간 효율성까지 더해 최대의 결과를 끌어내는 농업 방식이다. 실내 공간에 조성해 외부 기상 이변의 개입을 차단하고, 토양을 선반 형태로 층층이 쌓은 수직 농장 기법으로 공간 효율성을 높이고, 물과 빛과 무기염류를 최적의 농도로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이 모든 것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스마트팜의 광원은 대부분 보라색이다. 이는 최고의 효율을 위한 최적의 통제 결과다. 원래 태양 빛 속에는 다양한 파장대의 빛이 포함되어 있지만, 엽록소가 광합성을 할 때 이용하는 빛은 주로 65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와 450㎚ 파장대를 가지고 있다. 이 영역은 각각 우리 눈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보이는 빛이다. 식물의 잎이 초록색으로 빛나는 것은 엽록소가 우리 눈에는 초록빛으로 느껴지는 파장 500~600㎚ 영역대의 빛을 광합성에 사용하지 않고 모조리 튕겨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마트팜의 광원은 식물이 튕겨내는 초록색 파장의 빛을 제외하고, 빨간색과 파란색 파장의 빛만으로 구성된다. 이 둘이 섞이니 보라색으로 보인다.

광합성엔 빨강·파랑 파장의 빛 이용

많은 유전자변형작물(GMO) 연구도 이런 효율성 추구의 결과다. 현재 GMO 작물의 주된 연구 방향은 저온과 고온, 물 부족, 병충해 등 식물이 받는 여러 스트레스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주입해 악조건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쪽으로 집중된다. 스마트팜 같은 발전된 농경 방법이 식물 성장에 필요한 외부 요소를 통제하고 조절해 안정적 생산물 수확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GMO는 식물 내부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외부 요소가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안정적 먹거리를 위한 인류의 열망은 이처럼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외부 요소와 내부 유전자에 모두 접근하기에 이르렀다.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최적의 효율로 최대의 먹거리를 생산해내려는 열망이다. 먹고 산다는 것의 문제는 역시 인류 최대의 과제인 모양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