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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성 우려되는 방송법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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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

“오랜 고민 끝에 전직을 결심했다.” 실력과 패기를 갖춘 젊은 언론인의 이직 알림이 안타까웠다. “훈련과 단련을 쌓아서 로고스, 파토스, 그리고 무엇보다 에토스가 심신에 벤 직장 구성원과 리더가 되세요”라는 답신을 보냈다.

그와 나는 편향보도와 방송 민주화를 연관시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관을 공유했다. 얼마 전에 선임된 방통위원은 “불편부당 중립을 취하지 않고, 객관보도의 늪에 헤매지 않는 진짜 정론을 하겠다”는 언론노조의 주장을 지지해 왔다. 공영방송 KBS의 뉴스보도 간부는 최근 KBS 기자협회와 일문일답에서 “언론은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며 편향성 논란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편향적 보도는 의도치 않게 발생할 수는 있어도, 무책임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는 안 된다. 불편부당, 객관주의는 저널리즘을 떠받치는 기본 토대로 언론의 치열한 취재와 보도의 역사 속에서 저널리즘의 신조(working credo)가 된 것이다. 기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믿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것은 ‘정론’이 아니다.

민주당, 4월 국회서 처리 예고
야권에 기울어진 이사 추천권
독일 공영방송 제대로 배워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최선의 노력으로 진실을 밝히는 보도(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 워터게이트 보도로 대통령 닉슨을 하야시킨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편집장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진실보도를 향한 저널리즘의 이상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언론이란 지속적인 취재보도 노력으로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이 지난 21일 KBS·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고 새로운 사장 선임 방식을 포함한 방송법 개정안을 본 회의에 부의하는 안건을 단독 의결하고 4월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방송을 돌려 드리는 방송 민주화”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사 추천권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이 아니라 민주당의 품으로 공영방송을 가져가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편향성에 대한 우려이다.

공영방송과 언론에 대한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는 문제가 있다. 2017년 8월 전임 대통령은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2016년 7월에 발의한 방송관계법 개정안(특정 정당이 공영방송 사장을 마음대로 선출할 수 없는 ‘특별 다수제’ 내용을 포함했다)에 대하여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제동을 걸었다. 결과적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권이든 집단이든 공영방송의 거버넌스를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를 제지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게 한 것이다.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입법 움직임도 큰 소동을 일으켰었다. 가짜뉴스 개념을 매개로 언론사와 언론인이 감당하기 힘든 액수의 금전배상을 무기로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국내외 비판을 받았었다.

진정으로 모든 국민을 대변하는 공영방송을 만들려면 이번 방송법의 모델로 알려진 독일 공영방송(ZDF)의 겉모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독립성·균형성·내적 다원성을 유지하기 위한 ZDF의 철저한 노력을 제대로 벤치마킹해야 한다.

ZDF는 사장 선출과 사장이 선임한 본부장급 임원 인사 동의 및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단계에서 의견 제시 및 방송 후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권한을 지니는 방송평의회가 국민 대표성을 지닐 수 있도록 엄정한 제도를 유지한다. ZDF는 독일 연방 16개 주·종교(개신교·가톨릭·유대교)·노조·경영자·단체·농업·수공업·신문발행인·기자·구호기관·스포츠·전문가 단체와 심지어 2차대전 이후 구(舊) 독일제국 영토에서 추방된 추방자협회·스탈린주의희생자협회에 평의원 추천권을 배정한다.(「해외 공영방송에 대한 규제 정책 및 동향 분석」, 홍종윤 등) 이쯤 돼야 공영방송의 민주화와 국민의 품을 얘기할 수 있다.

방송법은 특정 정당이나 집단의 이익과 목적을 반영하는 불공정한 내용으로 혼동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이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서 공존하는 열린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