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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총서 10전 7패, 행동주의 펀드 “이제 시작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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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주주총회(주총) 시즌을 뜨겁게 달궜던 행동주의 펀드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부분의 주주제안이 주총 표 대결에서 무릎을 꿇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남긴 점은 높이 평가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 주총 결과를 분석한 결과 10건 중 7건은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승리를 거둔 곳은 3곳에 불과했고, 그 또한 일부 승리에 그쳤다. 주로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건이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상법상 감사와 감사 선임의 경우 대주주도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기 때문에 소액주주가 표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31일 남양유업에 대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감사 선임안이 통과되며 일부 승리했다. 그러나 배당 확대 등 다른 안건은 부결됐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의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도 통과됐다. 다만 소액주주 측이 제안한 배당안은 부결됐다.

얼라인파트너스(이하 얼라인)는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하이브와 경영권 분쟁 끝에 카카오가 승기를 잡으며, 이사회 구성안을 포함한 주주제안을 주총에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 세 곳을 제외한 다른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은 사실상 실패했다. 안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KT&G에 대한 주주제안은 완패했다. 배당금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사외이사 선임안 등을 두고 표 대결을 벌였지만, 결과는 국민연금이 KT&G 이사회의 편을 들며 모두 부결됐다.

BYC를 상대로 주주행동에 나선 트러스톤의 안건(배당금 증액·액면분할·감사위원 선임·자사주 취득)도 모두 부결됐다. 철강제품 개발업체 KISCO홀딩스에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감사위원 선임을 요구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도 소액주주와 연대했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배당 확대를 두고 주총에서 맞붙은 JB금융지주와 얼라인의 대결도 사측의 승리로 끝났다.

패배의 쓴잔을 든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자본시장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상현 FCP 대표는 “솔직히 국민연금이 모든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줄 몰랐다”며 “연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수탁위가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태광산업에 주주제안을 한 트러스톤은 사측이 감사위원 선임과 관련해 분리선출 제도를 유리하게 바꿔가며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은 이제 시작일 수 있다. 올해 한 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현 FCP 대표는 “KT&G 지분을 더 모아 다음 주총을 준비하겠다”며 “내년에 더 철저히 준비해 (주총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도 “내년만이 아니라 JB금융 이사회가 합리적인 자본 배치와 주주환원 정책 도입으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가 사측에 ‘소액주주의 목소리’란 중요한 신호를 보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경영진에게 (주주의) 문제의식과 불만을 전달한 만큼 사측도 예전처럼 무시만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행동이 국내 주식시장의 메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올해 주총을 통해 문제가 있는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업도 주주도 알게 됐다”며 “기업도 주총에서 이겼다고 끝낼 게 아니라 합리적 제안은 자발적으로 수용해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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