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문광 스님의 글빛 다실

진관사 태극기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문광 스님·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문광 스님·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삼일절을 맞아 서울 진관사에서 강연 요청이 있었다. 주제는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논문을 찾아보며 스님의 독립운동과 2009년에 칠성각 보수 공사 당시 발굴된 일장기 위에 그린 태극기를 연구해볼 기회를 얻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90년 만에 출현한 진관사 태극기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괘의 위치가 달랐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건(乾)과 곤(坤)은 그대로이나 물과 불을 상징하는 감(坎)과 리(離)의 자리가 바뀌어 있다. 그 후 1942년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했던 태극기도 진관사 태극기처럼 감리가 뒤바뀌어 있으니 실수로 잘못 그린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도 그 의미를 설명한 연구를 제시하지 못했다.

글빛 다실

글빛 다실

1882년에 고종의 명으로 사용되었던 태극기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쓰고 있는 태극기는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수화기제(水火旣濟) 괘의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 진관사의 태극기는 그 반대인 화수미제(火水未濟) 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 듯하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63번째인 수화기제는 이미 완전한 세상임을 뜻한다. 양의 자리에 양효(陽爻)가 있고, 음의 자리에 음효(陰爻)가 위치해 역학(易學)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정(中正)이 갖추어진 완전무결한 괘다. 그러나 동양의 시간관은 직선이 아닌 원상(圓相)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무상(無常)이 진리임을 보여준다.

주역의 마지막 64번째 괘인 화수미제는 다시 물과 불이 제자리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세계를 상징한다. 새롭게 시작하고 올바른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처음의 근본 자리인 건괘와 곤괘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괘의 위치를 바꾸어 일제강점기라는 전도된 세상을 뒤집겠다는 강력한 독립정신을 진관사 태극기는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문광 스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