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열자-김현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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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매월 25일이 다가오면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색다른 고민에 빠진다. 『아, 이번 반상회는 어디서 하지?』3년 전 아파트입주 후 단지 우리 애들이 이웃자녀들보다 학년이 높아 다른 주부들보다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이웃주부들의 의견으로 졸지에 동네반장 감투를 쓰게 되었다.
몇 번 사양하다 이것도 남을 위한 봉사니 이왕이면 모범반을 만들어 이웃이 한가족처럼 지내게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 처음 몇 번은 그런 대로 반상회 참석자도 많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불참자가 많아짐은 물론 사생활 공개라고 생각하는지 차례가 돼도 반상회 장소 제공조차 꺼리는 이들도 생겼다.
한때는 벌금을 걷자는 말과 반장을 3개월씩 돌아가며 맡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강제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반장도 감투라고 책임감이 생기는지 불참자가 많을수록 「내가 무능력해서 그런가」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30가구가 한 개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서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에서도 외면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이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시간을 내지 않아도 반상회 같은 시간에 모이면 자연스런 이웃이 될텐데…. 한 지붕 아래서 1년을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몰라 도둑으로 오인해 죽고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날씨가 차가워진다. 뜨듯하게 군불을 지핀 시골 사랑방에서 조각이불에 발을 모으고 정다운 얼굴로 이야기하는 그림 같은 이웃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서울 문래동6가 현대아파트201동8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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