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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로마 제국의 완벽한 하늘, 판테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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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로마에 가면 폐허와 유적이 널려 있지만 온전한 로마 건축물은 단 하나뿐이다.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는 이름의 판테온이다. 로마는 드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모든 나라의 신앙을 포용했다. 판테온은 팍스 로마나의 모든 신들을 위해 제국의 수도 한복판에 건설한 상징적인 신전이었다.

공화국 로마는 세 명의 실력자가 권력을 나눈 삼두 정치제를 택했지만 결국 내전이 발발했다.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가 되어 실질적인 황제정을 시작했다. 그의 오른팔 장군인 아그리파가 기원전 31년 승전 기념물로 판테온을 세웠으니 로마 제국은 이 만신전으로 시작한 것이다. 기원후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건물을 재건했다. 로마 5현제로 꼽히는 그는 제국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썼고, 판테온은 이를 위한 로마 도시 재건의 중심 프로젝트였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원통형 몸체 위에 반구형 돔 지붕을 올렸다. 외벽에는 어떠한 장식도 일절 없다. 이 투박하고 단순한 겉모습은 기상천외한 내부공간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름 43.3m의 이 원형 공간은 이후 50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큰 내부 공간이었다. 외부로 뚫린 유일한 창은 천장 정상부의 오큘러스(눈)라 부르는 둥근 천창뿐이다.

해와 달과 별들은 반구형 천구에 박혀있고 천체의 원운동은 곧 천구가 회전하기 때문에 보이는 착시이다. 로마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완벽한 우주론을 판테온에 구현했다. 어두운 실내에 오큘러스를 통해 천상의 햇빛이 비치고 때로 비가 내린다. 무수하게 파진 오목한 사각형 벽감들에 그림자가 생기는데, 태양의 궤적을 따라 음영이 이동해 시간을 느끼게 한다. 사각 벽감들은 무수한 천체이고 그림자의 변화는 곧 천구의 회전 운동이다. 21세기 로마 도시는 지동설의 세계지만 판테온 내부는 여전히 천동설의 우주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