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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잘하는 일이어서 하지 말아야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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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살다 보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어.”

최근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대행사’에서 광고기획사 임원 고아인(이보영)은 ‘매출 50% 성장’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데드라인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대부업체에서 300억 원대 광고 프로젝트를 제의해온다. 그러나 고아인은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거절한다. “내가 하면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까지 대출받게 만들 거야. 어릴 때 내가 겪은 고통을 다른 누군가가 겪게 하라고?”

한국 사회를 보라.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무엇이든 서슴지 않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대개는 결과야 어떻게 되든, 해야 할 일보다 잘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왜냐고? ‘나의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으니까. 요람에서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인정욕구에 허우적거리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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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능력을 확인 받기 위해 잠시의 무안함 쯤은 가볍게 넘어서기도 한다. 더욱이 경쟁자를 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대학원생(박해일)은 연신 칭얼거린다.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

고아인은 인정받고 싶다는 유혹을 어떻게 뿌리쳤을까?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자 광고인으로서 내 자존심이야.” 유능함을 과시할 것인가, 직업적 양심을 지킬 것인가. 그 경계선은 자기자신이 정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이 세상은 너무 잘하려는 자들의 손에 망가진다는 사실이다. 잘 못해서 사고 치는 경우보다 잘해서 사고 치는 경우가 더 많은 법. 명심하자. 유능함을 자제하지 못하면 그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린다. 일찍이 ‘넘버 3’에서 조폭 태주(한석규)가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았던가. “성경구절에도 써 있어. 재떨이로 흥한 OO, 재떨이로 망한다고. 조심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