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온몸 케찹 범벅 '빨간머리 미정이'…현실 더글로리 본 이 남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울산경찰청 김주엽 경위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울산지역 학교 100여곳에서 스쿨 폴리스로 일하며 학폭을 직접 목격했다. [사진 김주엽]

울산경찰청 김주엽 경위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울산지역 학교 100여곳에서 스쿨 폴리스로 일하며 학폭을 직접 목격했다. [사진 김주엽]

2017년 울산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빨간 머리 미정이(가명)’는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학교폭력(학폭)이 원인이었다. 미정이는 또래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에게 학폭을 당했다고 한다. 건물 옥상으로 끌려가 강제로 옷을 벗었다. 속옷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빌었고, 아이들이 몸에 빨간 케첩을 뿌렸다.

이후에도 따돌림과 괴롭힘은 이어졌고, 결국 미정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 안에 틀어박히게 됐다. 이런 사연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하다.

다양한 형태의 학교폭력과 ‘일진’을 수년간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한 스쿨 폴리스(학교전담 경찰관)가 학폭 경험담과 근절 노하우를 담은 책을 냈다. 주인공은 울산경찰청 소속 김주엽(49) 경위다.

그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년간 울산지역 중·고등학교 100여곳에서 스쿨 폴리스로 근무하면서 학폭 현장을 목격하고 가해·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직접 들여다본 학폭 모습과 ‘일진’에 대한 생각, 피해 학생의 아픔 등을 정리해 『그래도 괜찮아. 그땐 나도 그랬어』를 발간했다. 부제는 ‘위험에 빠진 10대의 골든타임을 지켜라!’다.

김 경위는 “‘더 글로리’, 이른바 ‘정순신 사태’ 등 사회 이슈화한 학교폭력 문제는 10년 이상 반복 중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경찰과 학교·학부모, 지역사회 모두 경각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몸소 겪은 학폭 현장사례를 중심으로 책을 꾸렸다. 새벽형 청소년의 어긋난 선택, 짙은 화장을 한 여장 소년, 가출팸(가출청소년이 모여 가족처럼 지내는 것) 아지트가 된 원룸, 집단화된 학교폭력, 학교까지 난입한 조직폭력배, 일생을 따라다니는 학교폭력 등과 같은 주제다.

스쿨폴리스로 8년간 일한 뒤 현재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김 경위는 지금도 학폭 근절을 위해 노력 중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학폭의 위험성을 알리는 글을 쓰고, 학폭 피해·가해 아이들의 근황을 살핀다.

또 대학교수·성형외과 의사·심리 전문가 등과 2018년 의기투합해 꾸린 학폭 근절 봉사단체 ‘징검다리’와도 교류하고 있다. ‘징검다리’는 학폭으로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있으면 상담하고, 비행 청소년 몸에 새긴 문신을 제거하는 등의 봉사를 한다. 학습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학폭 가해 또는 피해 아이들에게 일종의 과외도 해준다.

김 경위는 “지난해 충북교육청이 도입한 ‘SOS 학교폭력 해결단’과 같은 방식이 현실적인 학폭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해결단은 변호사, 학교전담 경찰관, 학폭 담당 교사, 전문상담교사 등으로 꾸려진 일종의 팀인데 분야별 전문가가 학교폭력 초기 조사부터 학부모 측 응대, 법률 대응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