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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훈의 과학 산책

놀이터 아이들의 천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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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퇴근길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나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아파트 더하기 26은?”하니 옆의 아이가 “몰라”하자 원래 아이가 “자전거 타기”라며 웃는다. 옆의 아이도 질 수 없다는 듯 “자전거 빼기 100은?” 묻고 혼자서 실컷 웃더니 스스로 “쓰러져”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의 뇌에 ‘대수학 신경망’이 형성되는 시기에 ‘언어처리 신경망’과의 상호작용이 ‘감마파 형태’로 번개치는 상황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만담같은 아이들의 말이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들린다. 아파트 26층에서 누군가 헬스용 자전거를 타고 있고, 자전거의 두 바퀴가 빠지면 서있을 수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유희 속에 관련성 없어 보이는 개념들과 대상들이 만나 논리적으로 결합하고 효율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이는 뛰어난 수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으로, 이들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새로운 통찰과 언어를 창조한다. 지난해 7월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도 조합론의 난제들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대수기하학의 강력한 도구를 적용해 멋지게 해결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놀이터 아이들은 모두 천재 수학자들이다.

과학 산책

과학 산책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학원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얼마 되지 않는 교과과정 내용을 지겹도록 반복하며 틀리지 않을 때까지 훈련한다. 작은 실수도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니 오로지 배운 방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도록 강요받는다. 성적이 정규분포에 가깝게 나오도록 의미없이 어렵기만 한 자잘한 문제들이 출제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비롯한 수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놀이터 아이들의 천재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한다. 고정된 틀과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자유로운 사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 수학 교육의 목표와 방향성에 대해 뛰어난 수학자들의 발언권이 커질수록 놀이터 천재 수학자들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