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브레이크 안밟으면 충돌”…친강 中외교부장, 美에 날 선 경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친강 외교부장 기자회견에 중국 국내외 기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성훈 특파원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친강 외교부장 기자회견에 중국 국내외 기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성훈 특파원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7일 “히스테릭한 신(新)매카시즘으로 미ㆍ중관계를 결정해선 안된다”며 미국을 향해 날을 바짝 세웠다.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다. 친 부장은 중·러 우호를 미·중 갈등에 앞세우며 시진핑 국가주석 3기 외교가 일종의 ‘항미원러(抗美援俄, 미국에 대항해 러시아를 돕는다)’ 기조임을 내비쳤다. 예년과 달리 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어 북핵 이슈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친 부장은 정찰풍선 논란부터 거론했다. 그는 “완전히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 우발적인 의외의 사건”이라며 “미국도 현실적인 위협이 아닌 것으로 인식했지만 무력을 남용하고 이를 구실로 피할 수 있었던 외교 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완전히 비이성적이며 건강한 궤도를 벗어났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이 말하는 이른바 ‘경쟁’은 전방위 억압과 억제이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중국은 미국에 끝까지 대항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친 부장은 “미국이 이른바 중·미관계에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충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중국이 반격하지 못하고 욕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기를 내비쳤다. 그는 “만약 미국 측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잘못된 길을 따라 폭주하면 아무리 많은 가드레일이 있어도 탈선과 전복을 막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충돌과 대항에 빠져들 것”이라며 “그 재앙적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친 부장은 미ㆍ중 관계 정상화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다. 그는 “중·미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양국의 공동 이익과 공동 책임, 양국 인민의 우의여야 한다”며 “미국의 국내 정치와 히스테릭한 신매카시즘이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친 부장은 ″히스테릭한 신매카시즘으로 미ㆍ중관계를 결정해선 안된다”며 미국에 날을 새웠다. 사진 중국 CCTV 캡처

기자회견에서 친 부장은 ″히스테릭한 신매카시즘으로 미ㆍ중관계를 결정해선 안된다”며 미국에 날을 새웠다. 사진 중국 CCTV 캡처

한반도와 한ㆍ중관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을 향해선 역사문제에 힘을 주어 말했다. 친 부장은 “역사를 거울삼아야 한다”며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배반을 의미한다. 죄를 부인하면 다시 저지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제3자 변제를 뼈대로 한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에 대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또 “일본의 일부가 이웃을 동반자로 여기지 않고 해를 끼치려 하고 심지어 중국을 저지하는 신냉전에 동참하려 한다”며 “그렇다면 양국간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새로운 아픔을 더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와 관계를 언급하며 달러 패권을 에둘러 비난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미래 중ㆍ러 무역에서 달러나 유로화를 폐기할 가능성을 묻는 러시아 기자에게 친 부장은 “국제 화폐는 일방적인 제재의 치명적인 무기(殺手鐗)나 따돌림이나 협박의 대명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달러 패권에 대한 공격이 시진핑 3기 경제 외교의 한 축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도 비중 있게 거론했다. 친 부장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고 큰소리치면서 대만 문제에서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지 않는 이유를 중국인들이 묻고 있다”며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왜 대만에 무기를 파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일 기자회견에서 대만 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친강 외교부장이 중국 인민공화국 헌법을 꺼내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라는 조문을 읽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7일 기자회견에서 대만 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친강 외교부장이 중국 인민공화국 헌법을 꺼내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라는 조문을 읽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2014년 외교부 대변인을 끝으로 9년 만에 기자회견장에 나온 친 부장은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 해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전날 밤 지정 호텔에서 격리를 마친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 앞에 선 그는 아무런 발언 자료 없이 단상에 올랐다.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 붉은 표지의 중국 헌법을 내보이며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며 통일 조국 대업의 완성은 신성한 책임”이라는 조문을 읽는 장면에선 현장의 카메라 셔터음이 가장 높아졌다.

“늑대전사 외교관”이라는 별명을 의식한 발언도 나왔다. 친 부장은 자신이 미국 대사로 부임할 때 ‘중국 전랑(戰狼,늑대전사)’이 왔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외교부장에 취임할 때는 이런 보도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전랑외교’는 일종의 ‘레토릭 함정’이다. 중국과 중국 외교를 모르고 사실을 무시하는 나쁜 생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 기자회견장. 친강 외교부장이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 기자회견장. 친강 외교부장이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이날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은 시진핑 정상외교→‘중국식 현대화’→중ㆍ러관계→‘시진핑 발전ㆍ안전 이니셔티브’→미ㆍ중관계→대만문제→우크라이나 위기→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중ㆍ일관계→인도ㆍ태평양전략→중동외교→전랑외교→중국ㆍ유럽 관계→중국의 대외 이미지까지 모두 14개 질문에 답변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 순서는 곧 시진핑 3기 외교의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친 부장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왕이(王毅) 현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위원회 판공실 주임의 마지막 장관 기자회견과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왕이 당시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은 동시통역으로 1시간 40여분 동안 진행됐고 총 27개 질문이 소화됐다. 이날 친 부장 기자회견은 그 절반 수준인 14개 질문이 소화됐다. 질문을 던진 14개 매체에는 관영 CCTV와 인민일보 등 중국 매체 7곳과 미 NBC방송, 프랑스 AFP통신, 러시아 타스통신, 일본 NHK방송이 포함됐으며 싱가포르, 파키스탄, 이집트 매체가 추가된 반면 한국 매체의 질문은 받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한·중 관계나 한반도 관련 코멘트가 나오지 않았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이 안정적인 대외관계를 추구하지만 핵심이익ㆍ발전이익ㆍ안보이익 등 현안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시킨 회견”이라며 “최근 중국의 정찰풍선과 러시아 지원 논쟁으로 인해 친 부장이 취임 초 보인 유화 모습에서 다시 강경한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