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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첫 휠체어 교사' 美 장애인 인권운동가 주디스 휴먼 별세

중앙일보

입력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 EPA=연합뉴스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 EPA=연합뉴스

미국 장애인법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이 별세했다. 향년 75세.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그는 전날 워싱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막내 동생 릭은 그가 소아마비 증후군으로 알려진 심장 질환을 앓은 것과 사인이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47년 12월 18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는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걸을 수 없게 됐다. 당시 휠체어는 '화재 위험물'로 간주돼 공립학교에 타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9살에 겨우 학교에 입학했지만 지하실에서 다른 장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나머지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조회 시간이었을 만큼 차별받았다.

휴먼의 부모님은 딸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그 결과 그는 1969년 롱아일랜드 대학교에서 연설 및 연극 학사 학위를 받았다.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학위도 받았다.

1970년대에는 뉴욕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해 뉴욕주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교사가 됐다. 그의 투쟁은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건물에서 24일간 농성을 벌이는 것으로 이어졌고, 이 사건은 결국 1990년 미국 장애인법(ADA)의 기초를 닦는 데 도움이 됐다.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는 사회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들, 예를 들어 일자리나 장애물 없는 건물 등을 제공하지 못할 때 비로소 비극이 됩니다"고 말했다.

휴먼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교육부 특수교육재활서비스국 차관보로 근무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국제 장애인 권리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휴먼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말하며 시민권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녀의 헌신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그녀는 수십 년에 걸친 활동을 담은 회고록 '나는 휴먼'(Being Heumann), '롤링 워리어(Rolling Warrior)'를 공동 집필했으며,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에도 출연했다.

휴먼은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에 의해 운영되는 세계 최초의 조직'이라고 불리는 버클리의 독립 생활 센터를 비롯해 장애인 권리와 관련된 많은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을 돕거나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재활법 504조 시행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앞에서 시위하는 휴먼. 사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재활법 504조 시행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앞에서 시위하는 휴먼. 사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1977년 재활법 504조 제정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연방정부 건물에서 한 달 간 진행했던 농성은 그의 삶에 제일 결정적인 순간이다. 재활법 504조는 연방 기금을 받는 모든 기관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당시 29세였던 휴먼은 다양한 장애를 가진 100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농성에 돌입했다. 이 시위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비폭력 연방 건물 점거로 기록됐다.

이후 휴먼은 의회 특별 청문회에 참석해 "우리는 더 이상 정부가 장애인을 억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법 504조는 1990년 미국 장애인법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 법은 민간 부문과 기타 공공 생활의 많은 영역으로 장애인에 대한 보호 범위를 확대했다고 평가 받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녀가 남긴 유산은 우리 행정부의 많은 유능한 장애인 공직자들을 포함해 모든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애도를 표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역시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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