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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반도체법 지원기준 공개…“군사용 반도체 공급 등 국가안보 최우선 고려”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에서 열린 메이드인 아메리카 행사에서 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에서 열린 메이드인 아메리카 행사에서 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제조(생산) 보조금을 받는 기업을 선정할 때 군사용 반도체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공급 등 자국의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반도체과학법(Chips Act) 보조금 신청절차 및 심사 기준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미 상무부는 이날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 보조금 신청서를 제출할 때 다뤄야 할 우선순위 영역들을 소개했는데 이 중에서 국가안보와 경제가 가장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무부는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늘리는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며 “미국 내에서 미 국방부와 국가 안보 기관에 반도체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을 보조금 지원이 가능한 사례로 들었다. 상무부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미 국방부와 국가 안보 기관이 미국 내에서 만든 최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美상무장관 “반도체법은 국가안보 계획”

지난달 28일 중국 장쑤성 쑤첸현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중국 장쑤성 쑤첸현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상무부가 이런 방침을 밝힌 건 미국 군사 장비에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 정부 관리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손상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드론부터 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교한 군사 장비는 반도체에 의존한다”며 “반도체과학법은 ‘국가 안보 계획(initiative)’”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첨단 반도체 수요의 90%를 대만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국가 안보의 취약성”이라고 말했다.

초과이익 공유, 보육서비스 등도 포함

지난해 3월 열린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과학법 제정 촉구 토론회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해 3월 열린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과학법 제정 촉구 토론회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발표 전에 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초과이익 공유제’도 보조금 심사 기준에 포함됐다. 보조금 신청 시 예상 수익을 반도체 기업에 제출토록 하고 이를 초과하는 수익은 미 정부가 가져간다는 게 골자다. 상무부는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수익의 일부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며 “(수익 공유는) 지원된 자금의 75%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보호한다”며 “(초과 이익은) 미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쓸 것”이라고 밝혔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3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사업의 상업성도 심사 기준으로 꼽혔다. 기업이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 공장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지를 따지겠다는 뜻이다. 사업의 예상 현금 흐름과 수익률 등의 수익성 지표를 따져 재무건전성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사업이 기술적으로 타당성을 갖췄는지, 환경 등 관련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지 등 공장 건설의 준비 상태도 검증할 계획이다. 러몬도 장관은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의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며 “백지수표(blank check)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제적 약자 채용, 공장 직원과 건설 노동자에 대한 보육 서비스 제공 조건도 제시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과 미래 투자 의지도 따져본다. 여기엔 바이든 정부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의 일환인 미국산 건설 자재 사용도 포함됐다.

심사 기준엔 중국을 겨냥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포함됐다.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현재 허용된 중국 내 구형 범용(legacy) 반도체 시설 생산품과 관련한 구체적인 제한 기준이 나올 거란 관측이 있었지만, 상무부는 “국가 안보 우려의 원천이 되는 특정 국가에서 제조 능력을 확장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밝혔다. 이외에 적성 국가들과 첨단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제휴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심사기준에 담겼다.

“美 반도체 강화가 세계 경제에도 도움”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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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390억 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110억 달러 등 5년간 약 520억 달러를 편성하는 법안이다. 이번에 상무부가 심사기준을 밝힌 것은 지난 28일부터 신청을 받는 390억 달러 규모의 생산 보조금에 해당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초과이익공유제 등 논란 있는 조건까지 제시하며 반도체과학법을 내세운 명분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다. 최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를 조성하고 전문 인력을 키우는 데 반도체 기업이 준 이익을 쓰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세계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상무부는 “반도체 공급망은 세계적이며, 공급망의 다양한 요소가 지리적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집중돼 있다”며 “이러한 집중은 사이버 보안 위협에서부터 자연재해,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험이 국제 반도체 공급망에 차질을 빚게 하고, 미국과 세계 경제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고민 커진 삼성·SK하이닉스

하지만 미국 내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해외 반도체 업체들로선 까다로운 심사 기준으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을 금지하는 조항에 더해 미 상무부와 예상 수익까지 논의해 개별 협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선임연구원은 WSJ에 “(상무부가 제시한) 심사 기준은 제정된 반도체법보다 더 많은 조건과 제한을 둔 것”이라며 “바이아메리카 등과 같은 다양한 요구사항은 반도체 생산 기업의 비용을 높여 (미 정부의 반도체 육성) 프로젝트 달성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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