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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하림 회장 - 김관영 전북지사 대담] “지방으로 이전하는 대기업·명문대에 세금 면제해주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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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16면

김홍국 하림 회장 - 김관영 전북지사 대담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왼쪽)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통념을 깨는 시장경제 역발상이 지역을 살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영재 기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왼쪽)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통념을 깨는 시장경제 역발상이 지역을 살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영재 기자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의 저자 아쿠스 다카시는 북카페를 운영한다. 독서를 즐기는 그는 마우스 클릭 소리, 타이핑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이유를 “이질적인 혹은 불연속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뇌가 완만한 차이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이질적인 혹은 불연속적인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뇌과학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지방 회생’이나 ‘지역균형발전’ 같은 어젠다 또한 우리의 시야(視野)에 들어오더라도 잘 보이지 않는 주제로 자리매김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지역 회생 정책들이 ‘이질적이거나 불연속적인 차이’를 주지 못한 탓이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정책들이 우리 뇌에 완만함을 안김으로써 지방 관련 이슈는 늘 관심사의 뒷전으로 밀린 감도 있다.

이런 면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과 김관영 전북도지사의 주장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두 사람은 2월 17일 발간된 월간중앙 3월호 ‘구루와 목민관 대화’에서 지역균형발전 전략과 관련해 역대 정책 대안과는 결이 다른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예컨대 지방으로 이전하는 대기업과 명문대에 법인세, 상속세, 부동산 거래세 등을 감면, 면제하자고 제안했다. 노조 파업 없는 ‘노 스트라이크 존(no strike zone)’ 조성, 환경 점검 사전 예고제 등 기업이 지방에서 성공 신화를 쓰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 16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지역 불균형은 심화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 지방의 회생과 지역의 균형발전은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 즉 기업과 대학이 지방에 진출해야 한다. 저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과 명문대가 지역으로 가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 시책에 따른 강제적 이전이 아니라 제도 자체가 혜택이 되면서 자발적으로 지방으로 가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언젠가 계산해봤더니 서울의 한 명문대 부지는 아파트, 상가 등 다른 용도로 개발하면 15조원의 가치로 평가되더라. 이 대학이 부지를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세금 등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서울에서 멀리 갈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자. 해외 명문대 중에는 시골에 자리한 대학이 많지 않나. 대학부지 매각 대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오로지 학교 이전과 발전에 쓰게 하는 것이다. 15조원 중 대학 타운과 기숙사 등 최고의 캠퍼스를 만드는 데 7조원을 들이고 나머지 8조원은 대학이 보유, 활용하면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도약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재원이다. 게다가 서울의 명문대가 온다면 부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지자체도 나올 수도 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방으로 가는 대기업은 법인세 절반을 깎아주자. 더 먼 지방으로 가는 경우 법인세를 아예 면제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증여·상속세를 감면하거나 면제해줄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한 지역에서 고용을 7년 유지하면 상속세를 100% 탕감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은 그런 저력으로 수출 대국, 무역흑자 3000억원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렇게 되면 세수(稅收)에 구멍이 생기진 않을까?

김 회장 :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에 쏟아부은 144조원을 법인세 부족분에 충당하면 된다. 지방이 회생하면 줄어들 법인세, 상속세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세수가 새로이 걷힐 것으로 확신한다. 대기업과 명문대가 지방으로 이전하면 관련 중소기업들도 쫙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원리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면 기업, 대학이 지방으로 가게 된다. 사실 대한민국은 엉뚱한 데 돈을 억지로 써버려 정책이 실패하는 나라다.

농업 보조금 많이 주는데도 농업 경쟁력은 꼴찌다. 저출산 대책에 그렇게 큰돈을 퍼부어도 출산율은 바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소기업 예산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 1년 생존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뭐든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돈을 넣어 모든 게 해결된다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근본적으로 순리(順理)에 어긋나는 정책은 100% 실패하게 돼 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 : 김 회장 얘기는 대기업과 명문대 지방 이전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인데 백분 공감한다. 법인세·상속세·증여세의 과감한 면제 내지는 감면 이런 게 수반된다면 시장은 분명히 기능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현실에서는 그게 참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가자면 구조를 바꿔야 하고, 결국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분포를 보면 수도권 출신이 더 우세한 실정이다. 수도권 소재 대기업과 대학의 지방 이전에 이들이 호응할지 의문이다.

‘중앙지방협력회의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분기별로 열리는 중앙지방협력회의가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국무총리, 중앙부처의 장관, 17개 광역지자체장 등이 지방 자치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국정운영 플랫폼이다. 이 자리서 저를 비롯해 많은 광역지자체장이 법인세, 상속세 획기적인 감면, 교육부의 대학 정원 조정기능 지방 이전, 지자체의 비자 발급 등 지역 발전에 필수적인 의제들을 공론화하고 있다.

김 회장 : 지난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실장 관리들과 함께 전북 익산에 있는 하림 본사와 공장을 찾아왔다. 윤석열 정부 첫 국무회의를 세종시에서 개최하기에 앞서 대통령에게 보고할 지방소멸 대응책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제가 언급한 대기업, 대학 이전 방안을 얘기했더니 공감하더라. 저도 이게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방안을 누구든 선언적으로라도 꾸준히 주장해줘야 그 사업에 탄력이 붙는 법이다. 지방에 가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쪽으로 제도를 다듬으면 나머지 문제는 알아서 해결된다. 심지어 지방에 가는 대기업에는 중소기업에 주는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 시장의 반응은 뜨거울 것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받지 못하는 혜택이 100개도 넘는다. 지방의 대기업이 이런 혜택을 누린다? 갈 기업은 가게 된다.

대기업들이 인센티브 준다고 지방으로 과연 내려갈까?

김 회장 :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기업 경쟁력에서 격차가 나게끔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노동의 경우 외국의 싼 인력을 수도권 기업에는 못 쓰게 하고 지방에는 확 풀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지방에 있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경쟁력을 갖게 환경을 만들어 주면 상대적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기업들도 지방으로 가게 된다.

김 지사 : 전북도는 노동 문제가 성공하는 기업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노총·민주노총과 노사 상생 협약을 통해 노사가 협력하는 전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는 전북도를 노동자가 불이익을 입지 않는 각종 안전장치를 만들어 파업 청정지역으로 한번 만들어보고자 한다. 실질적인 ‘노 스트라이크’ 지역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환경 규제도 문을 열어둘 참이다. 과거 불시 단속하던 것을 지금은 도내 1000여 개 기업에 환경 점검 일자를 예고하고 점검을 한다. 그 전에 문제점을 다 해소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 대담 전문은 2월 17일 발행된 월간중앙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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