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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0㎞ 강행군’ 비웃는 의지…“정신력으로 버텨야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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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가운데)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양의지(가운데)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36)는 최근 한 달 사이 비행기만 수차례를 탔다. 먼저 지난달 19일 호주 시드니로 날아가 개인 훈련을 시작했고, 이달 1일 현지에서 곧장 두산의 스프링캠프로 합류했다.

예년 같으면 추가 이동 없이 시드니에서 몸을 만들었을 양의지. 그러나 올겨울은 이야기가 달랐다. 다음 달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비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으로 이동해야 했다.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일단 양의지는 12일 시드니에서 서울로 향했다. 이어 하루만 쉰 뒤 14일 투손으로 출발했다. 직항편이 없어 LA를 경유해야 하는 여정. 서울과 시드니를 왕복한 뒤 태평양을 건너오는 거리를 모두 합치면 무려 27000㎞ 가까운 대이동이다. 이달 말에는 WBC 1라운드를 위해 다시 일본 도쿄까지 가야 한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칠 법한 강행군이지만, 양의지의 얼굴에선 ‘늘 그렇듯’ 여유가 넘쳤다. 야구국가대표팀 소집훈련이 시작된 16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만난 양의지는 “(한 달 사이) 이렇게 많이 이동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항공사) 마일리지는 많이 쌓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할까봐 어제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 푹 자고 나와서 몸 상태는 괜찮다”고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양의지는 자타공인 국가대표 주전 안방마님이다. 2015년 프리미어12를 시작으로 2017년 WBC,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올림픽까지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마스크를 썼다. 국가대표로 뛴 게임도 31경기나 된다.

이번 WBC에서도 양의지는 이강철(57) 감독과 조범현(63) 기술위원장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이었다.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경험과 노련미를 모두 갖춘 유일무이한 포수가 바로 양의지였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양의지는 “국가대표는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다. 이렇게 매번 뽑아주셔서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마음으로 동생들을 이끌어보겠다”고 했다.

한국야구는 최근 들어 마운드가 약하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88년생인 김광현(35·SSG 랜더스)과 양현종(35·KIA 타이거즈)이 여전히 투수진 주축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2002년생 이의리(21·KIA)와 2001년생 소형준(22·KT 위즈) 등 어린 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중책을 맡기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나 양의지는 “내가 봤을 때는 우리 마운드가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이 나가서 패기 있게 던지고, 내가 잘 받아준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의지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양의지가 16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손(미국 애리조나주)=고봉준 기자

이날 양의지는 유독 일본이라는 단어를 많이 꺼냈다. 2019년 프리미어12과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의 한·일전에서 연달아 고개를 숙인 아픔이 떠올라서였다.

양의지는 “최근 두 차례 한·일전에서 크게 졌던 기억이 있다.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잘 준비해 꼭 되갚아주고 싶다”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이어 “일본야구는 경기 영상이 많이 있다. 이를 더 자세히 보면서 분석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한국이 2라운드까지 통과하면 미국 마이애미주 플로리다로 건너가 4강전을 치른다. 37살 베테랑 포수에겐 쉽지 않은 강행군이 또 다가오는 셈이다. 그러나 양의지는 “정신력으로 버티겠다”는 결연한 한마디로 주위의 걱정을 차단했다.

전날 조금은 피곤한 얼굴로 도착한 양의지는 이날 수비와 타격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방망이를 돌린 뒤에야 짐을 챙겼다. WBC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이 양의지의 듬직한 뒷모습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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