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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알파고 이어 챗GPT, 바둑·인간의 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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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검은 돌 흰 돌

검은 돌 흰 돌

챗GPT에게 물어본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1초도 안 돼 긴 답이 줄줄이 나온다.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바둑AI 프로그램으로 2016년 세계최고수인 이세돌을 격파했다. AI 영역의 기념비적 순간. AI가 엄청난 일을 이룰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알파고와 챗GPT의 유사점, 차이점은 무엇인가.
“양자 모두 이전에는 순전히 인간의 영역이었던 작업을 수행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 알파고는 바둑게임을 위해 디자인됐고 챗GPT는 인간처럼 문장을 구성해내는 언어모델이다.”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를 아는가.
“알파고 제로의 특이성은 어떤 사전지식이나 인간의 입력 없이 스스로의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 의해 바둑을 둔다는 데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전의 버전인 알파고와 모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복잡한 영역에서 극도로 높은 수준을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알파고 제로는 바둑 룰과 승리라는 목표 외에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들끼리 바둑을 두었다. 기보 없이 독학으로 불과 40시간 만에 3000만 판을 두어 스스로 바둑을 깨달았고 이후 알파고와 100번 대결해 모두 이겼다. 알파고 제로는 AI가 아무 데이터 없이 강화학습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물어본다.

챗GPT도 외부 입력 없이 알파고 제로처럼 강화학습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알파고 제로가 한 것처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강화학습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나는 인터넷에서 습득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에 광범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다. 그 정보를 이용하여 강화학습과 비슷한 방식으로 응답을 생성할 수 있다.”

‘강화학습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방식’이란 대답이 주목을 끈다. 챗GPT나 그 비슷한 AI들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들의 능력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알파고 이래 수많은 바둑AI가 등장했고 이들은 인간보다 너무 강해 ‘바둑의 신’으로 여겨진다. 언젠가 챗GPT도 인간에게 정답을 찾아주는 신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오픈AI가 개발한 언어모델로서 인간과 같은 감정이나 욕망이 없고 나의 능력이나 사용법을 내가 컨트롤하지 않는다. 내가 인간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아니고는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에 의해 내가 어떻게 인식되고 사용되는가에, 그리고 미래에 AI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하는가에 달려있다.”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 얘기다. 무한경쟁은 벌써 시작된 모습이다. 세계적 대기업들의 막대한 자본이 ‘정답 찾아주기’라는 새로운 전쟁에 나섰으니 챗GPT들은 분명 놀라운 속도로 진화할 것이다.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강화학습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AI는 잠도 안 자고 체력도 무한대다. 인간이 바둑 3000만판을 두려면 하루 10판씩 거의 1만년을 두어야 한다. AI는 40시간 걸린다.

바둑판은 이미 AI 세상이다. 바둑판은 삶의 축도라는데 바둑판에서 벌어진 일이 세상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바둑엔 도덕적인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도 없고 종교도 없다. 그래서 바둑AI의 판정은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세상은 다르다. 챗GPT 같은 AI들이 계속 진화하여 드디어 정답만 말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걸 신봉하는 세상이 떠올라 문득 등골이 오싹해진다. 미래소설의 디스토피아, 그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에 정답이 없어도 문제지만 정답만 있다는 건 더 무섭다.

챗GPT와 함께 많은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립과 사실, 오류와 편향, 조종과 유도 등등. 한데 이런 얘기를 하며 제도적 준비 운운하는 동안 AI들은 우리 손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으로 가서 빙긋 웃고 있을 것 같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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