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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수사'도 딴 곳 보냈다…곽상도 50억 무죄, 檢 승부수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1심 법원 판단에 불복해 13일 항소했다. 법원이 지난 8일 1심에서 곽 전 의원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린지 닷새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곽 전 의원의 1심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준철)에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1심 판결은 제반 증거와 법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사회통념과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항소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법원의 무죄선고로 검찰은 내부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서울중앙지검은 곽 전 의원 사건을 수사한 반부패수사3부(부장 강백신) 소속 검사를 곽 전 의원 재판에 추가 투입하고, 지난 2일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자동 호텔 특혜 의혹’ 사건을 도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이첩했다. 1심 무죄 판결로 특검이 추진되고 있는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물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오는 한편, 이 대표에게 뇌물 혐의 적용을 검토중인 수원지검의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례의 벽에 부딪힌 검찰 

 항소 제기 여부에 대한 검찰의 판단이 늦어지자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곽 전 의원에 대한 기소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1심 때처럼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가 받은 50억원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과 동일시해 뇌물수수죄(형법 129조 1항)를 적용하는 대신 제3자뇌물제공죄(형법 130조)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기소 당시 검찰은 곽 전 의원과 아들을 ‘경제적 공동체’로 파악했지만 1심 법원은 “병채씨가 성인으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돈을 받았다고 해서 곽 전 의원이 아들에게 쓸 비용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이같은 법리 적용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다른 사람’이 금품을 받게 한 경우 “그  평소 공무원이 그 다른 사람의 생활비 등을 부담하고 있었다거나 혹은 그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음으로써 공무원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에 공무원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는 판례에 따른 판단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는 대가로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는 대가로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이같은 판례에 따라 공무원이 처벌된 사례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 검찰은 2015년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STX가 정 총장 장남이 33% 지분을 보유한 요트회사에 건넨 7억여원의 후원금을 정 총장에게 준 뇌물로 보고 기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결국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야 죄목을 제3자뇌물제공죄로 변경했다.

그래도 직진…“아들도 공동정범 기소 검토”

 그럼에도 검찰은 우회가 아닌 직진을 택했다. 검찰 관계자는 “병채씨가 받은 50억원은 부친인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된 걸로 볼 수 있다는 게 상식적”이라며 “병채씨에 대한 추가 수사로 뇌물죄 입증을 탄탄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뇌물수수’라는 죄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아들 병채씨를 뇌물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또 법원이 증거능력을 부정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 상 김만배씨의 진술 일부에 대해서도 입증 논리를 보완할 예정이다.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죄 성립 여부는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인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의 대북송금 의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8개월의 장기 해외 도피 끝에 태국에서 붙잡힌 김 전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뉴스1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죄 성립 여부는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인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의 대북송금 의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8개월의 장기 해외 도피 끝에 태국에서 붙잡힌 김 전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뉴스1

 이같은 결정에는 아버지 지인 회사에 취업한 아들도 경제적 공동체로 볼 수 없다면 뇌물수수죄 성립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진다는 나름의 판단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인 차원의 후원금 형태였던 ‘정옥근 사건’과 아들의 퇴직금 명목인 곽 전 의원 사건은 질적 차이가 있다”면서 “1심에서 제출된 아들과 아버지의 통화량 증가 외에 아들의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을 곽 전 의원이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추가 입증돼야 검찰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자뇌물제공죄라는 우회로에도 적잖은 장애물이 있다는 점도 검찰이 직진을 택한 배경이라는 관측도 있다. 뇌물수수의 경우 대가성이 포괄적으로 인정되지만 제3자뇌물제공죄에선 구체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이 추가로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김만배씨의 뇌물공여의 동기와 관련해 “호반건설 회장이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컨소시엄 합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하나은행이 참여하는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와해 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우회로를 택할 경우 ‘부정한 청탁’의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청탁 대상의 실재를 부인한 것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묵시적 청탁도 인정된다지만 공무원과 뇌물공여자 사이에 구체적인 청탁거리에 대한 상호인식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다”며 “청탁의 전제가 이미 부인당했다면 검찰의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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